[사설]憲裁와 대법원의 영역다툼

  • 입력 1997년 12월 25일 20시 29분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결정을 따르지 않은 대법원 확정판결을 취소하는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대법원은 즉각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법률해석에 불과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다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후속 재판에서도 고수할 것 같다. 국가 권력구조와 재판권에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가 기관이기주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이 기회에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두 기관의 기능이 분명하게 구획돼야 한다. 법률조항의 무효를 선언하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기관이 따라야 한다. 문제는 어떤 법률조항이 합헌적인 내용과 위헌적인 내용을 동시에 담았을 때 해당 법률조항 전체의 효력을 무효로 하지 않고 위헌적인 부분만 무효로 하는 한정위헌 결정이다.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이 사법권 침해라는 입장을 지키고 있으나 실제로 이번 경우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건에서는 헌재(憲裁) 결정을 존중했다. 우리나라의 헌법재판 역사는 10년이 채 되지 않을 만큼 일천하다. 헌법재판소는 관련 분야의 연구와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정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같은 변형결정의 틀을 조심스럽게 확립해나가고 있고 대법원도 생소한 제도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두 기관중 어느 기관도 다른 일방에 대해 우월하지 않다. 두 기관은 서로 자제하고 존중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단순한 의견표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법원의 견해는 국가기관인 헌법재판소를 사설 법률사무소처럼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 또한 사실상 4심제라는 오해가 나오지 않도록 법률해석에 가까운 결정은 최대한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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