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은택/또 약속어긴 재경원 「심야 브리핑」

  • 입력 1997년 12월 25일 20시 29분


25일 0시 임창열(林昌烈) 재정경제원부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 1백억 달러를 지원받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워싱턴에서는 잠시 혼선이 일었다. IMF나 미국 재무부 모두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IMF는 한시간반 뒤, 미 재무부는 두시간반 뒤 발표했다. 한국의 발표시간은 IMF의 이사회가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현지기자들이 확인질문을 했으나 IMF관계자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 이달초 한국과 IMF의 의향서가 한국언론에 보도됐을 때 보였던 불쾌감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돈을 주는 쪽에서는 모른다고 하는데 돈을 꿔가는 쪽에서 돈내놓으라고 하는 듯한 한국쪽의 기자회견이 있은 후 두세시간이 흘러갔다. 미 언론들은 자국 정부가 한국사태에 직접 개입키로 한 결정을 모르고 있었다. 이같은 「소외」가 이들 언론보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번 결정은 심야에 발표할 만큼 화급한 내용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약속이다. 또 국제금융계의 동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계 언론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국내언론에 다 발표된 내용을 이곳의 현지 언론이 확인하기 위해 허둥대는 것은 「IMF시대」에 맞지 않는 브리핑이다. 심리적인 측면이 강한 이번 위기에서 우리의 숨통을 죄어오는 외국언론의 파괴력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워싱턴포스트의 『한국이 망한들 국제사회에 무슨 피해?』라는 11일자 기사는 투자가들에게 미국이 한국에서 손뗄지 모른다는 우려를 안겨주었다. 이 기사는 외환위기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금융개방을 망설였던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경고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그는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일지 모른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에 대한 22일자 사설은 미국이 이제 김당선자를 신뢰하고 한국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겠다는 신호탄이었다. 요즘 한국정부 고위관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이곳에서 집중조명된다. 시간약속 하나 지키지 못해 국제기구와 국제금융계, 그리고 언론의 불신을 더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홍은택(워싱턴 특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