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보완/기대 효과와 부작용]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정치권에서 금융실명제에 대한 전면 보완방침을 확정함에 따라 93년8월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사실상 폐기처분될 처지가 됐다. 금융거래에 대한 철저한 비밀보장 등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보되고 무기명 장기채권이 도입되면 실명제의 뼈대는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이다. 실명제 폐지론자들은 한결같이 『부실의 늪에 빠진 작금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고 실명제 폐지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실명제 보완을 담보로, 즉 기득권층의 반대와 일부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고수해온 금융관행을 포기하면서까지 얻는 게 과연 무엇이냐고 반문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효과〓실명제 폐지론자들은 실명제 때문에 저축이 줄고 소비가 증가한다고 주장해 왔다. 자기 소득이 노출되는데 따른 불안감으로 아예 저축을 기피했다는 얘기다. 특히 금융소득 종합과세로 금융소득은 물론 부동산임대소득 사업소득 근로소득 등 모든 소득원이 한꺼번에 노출되는데 대한 일부 기득권층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금융계는 이와 관련, 『고소득층의 심리적인 부담감을 덜어 장롱속 자금을 금융기관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지적했다. 또 무기명 장기채의 발행으로 상당규모의 지하자금이 산업자금화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 규모가 기업자금난 해소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미지수라는 반응.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일각에서는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지만 지하자금의 상당부분은 이미 차명 등으로 포장을 달리해 지상에서 활보하고 있다』며 『무기명 장기채 투자자금은 많아야 3조∼4조원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작용〓실명제는 그동안 경제정의 실현이라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권과 기득권층의 반발로 도입이 연기되다가 93년 전격 실시됐다. 돈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공평과세를 실현한다는 게 그 취지. 실명제 전면보완은 이런 점에서 볼 때 「거꾸로 개혁」인 셈. 금융계 관계자는 『천신만고끝에 도입한 제도를 유명무실화하면 과연 누가 언제 이 제도를 다시 도입하겠느냐』며 사실상 실명제는 폐지된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강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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