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異見만 확인한 4자회담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제네바에서 열린 남북한 미국 중국의 4자회담 1차 본회담이 내년 3월 2차회담을 갖기로 하고 10일 이틀간 일정을 마쳤다.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회담이 본격 가동됐다는 점에서 이번 제네바회담의 역사적 의미는 컸다. 그러나 한미(韓美)양측이 당초 목표로 삼았던 본회담의 기본틀을 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미 양측은 평화체제와 긴장완화, 신뢰구축문제를 다룰 2개 분과위부터 설치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예상했던대로 북―미(北―美)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 철수, 북―미관계 개선 그리고 미국의 대북(對北)경제제재완화 등 기존의 입장을 의제로 세분화해 다루자며 맞섰다. 본회담 자체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만을 강조함으로써 회담의 격(格)을 예비회담 수준으로 다시 떨어뜨린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성급하게 본회담을 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사실 이번 회담은 지난달 21일 예비회담 이후 20일도 채 안된 시점에 열려 의제문제를 사전 조정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예비회담 때와 조금도 바뀌지 않은 북한측 태도 때문이다. 북한측은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대화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4자회담에 참석했다며 표면적으로는 남북대화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이는 한국측 이시영(李時榮)수석대표의 설명처럼 의미를 부여할 필요조차 없는 원론적 수준의 용어구사에 불과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2차 본회담 준비를 위해 내년 2월 중순 베이징(北京)에서 특별소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나 의제문제에 대한 상호 이견(異見)이 어느정도 해소될지 의문이다. 우선 북한측은 한국의 정권교체기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불안한 국내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입장을 더욱 완강히 주장하면 했지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 같지 않다. 미국은 한국의 대선후보들을 개별 접촉, 4자회담 지지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회담진전에 적극적이다. 의제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미국이 북한측 입장에 지금보다 더 경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자회담의 목적은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항구적인 평화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회담을 정치 선전장으로 이용하거나 외교 경제적 이익만 도모하려 한다면 안하는 것만 못하다. 또 회담의 직접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남북한이다. 미국과 중국은 보조적 역할만 할 뿐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지켜져야 4자회담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아무리 한국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해도 대북관계에 있어서만은 이같은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IMF체제 아래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면 외교력도 약화되기 쉽다. 어느때보다 슬기롭게 4자회담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