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파키스탄]김효태/여성보호의식 투철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0시 16분


파키스탄에 온 지 얼마 안돼 카라치에서 비행기로 이슬라마바드공항에 도착, 리무진버스에 옮겨 탔을 때의 일이다. 버스안은 승객들로 가득했는데 뒷좌석 긴 의자에는 끝에 여자 혼자 앉은 채 비어 있었다. 뒷좌석 가운데로 가서 앉았는데 옆에 서 있던 한 사나이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없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양쪽으로 두 사람 정도는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남았는데도 일어나라니 의아했다. 더구나 푹푹 찌는 날씨에 강아지 다루듯 손가락을 까딱거려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그냥 앉은 채 양손과 어깨를 살짝 들었다 놓으면서 「왜 그러냐」는 몸짓을 보냈다. 그러자 사나이는 노골적으로 눈을 찡그리며 손목을 흔들어댔다. 분위기가 이상해 자리에서 일어나니 순식간에 서너명의 남녀가 뒷좌석을 차지했다. 끝좌석에 차도르를 쓴 여자 세명이 나란히 앉았고 내 자리에는 친척으로 보이는 남자 한명이 국민복인 샤와르카미즈를 입은 채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는 또 다른 남자와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았다. 순간 「아차, 여자와 같이 앉으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키스탄 여자들은 다른 남자 옆에 절대 앉지 않으며 남자들은 여자가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알았다. 창쪽 좌석의 남자가 스튜어디스의 안내에 따라 부부로 보이는 남녀에게 자리를 내주고 다른 뒷좌석으로 옮겨 가는 것이었다. 늦게 기내에 들어와 부인이 앉을 좌석이 마땅치 않자 스튜어디스가 급히 자리를 조정해준 것 같았다. 항공사에서 모슬렘 여성은 다른 남자 곁에 앉지 않도록 좌석을 배정하는데 그 날은 두 사람이 늦게 체크인해 남은 좌석을 배정해준 것이리라.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부락의 여인들, 특히 북쪽의 파탄족 모슬렘 여인들은 얼굴까지 가리고 다닌다. 이들은 얼굴을 외간남자들에게 보이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남자들이 얼굴을 보고 음심을 품을까 우려해 머리와 얼굴을 가리는데 남자가 음심을 품지 않도록 도와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머리 목 귀만 가리는 것을 차도르, 얼굴까지 완전히 가리는 것을 니카브라고 한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본래 얼굴까지 완전히 가리도록 하지는 않았으나 여성 과잉보호 관습으로 니카브로 발전했다고 한다. 김효태(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카라치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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