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강의 기적」은 끝났는가?

  • 입력 1997년 11월 5일 19시 48분


부즈 앨런&해밀턴이라는 미국 컨설팅회사가 「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얼마 전 재정경제원을 개편해야 한국경제가 산다고 권고했던 바로 그 연구용역기관이다. 이 보고서는 첫머리에 「한강의 기적은 이제 막이 내리고 있다」고 적고 있다. 한국경제의 장래를 전망하면서 날로 뒷걸음질치는 국가경쟁력과 한국적 고질병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들어 우리에게 뼈아픈 충고를 해 준 보고서는 그동안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부즈 앨런&해밀턴의 한국보고서는 그 어느 것보다 충격적이다. 세계적 권위의 컨설팅회사가 작성한 부정적인 국가경영진단이어서가 아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장애와 국제경쟁환경의 역동적 변화를 섬뜩하리만큼 예리하게 꿰뚫어 보면서 내놓은 비관적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한국경제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넛 크래커(호두 까는 기계)에 낀 호두알」에 비유했다. 여기에 대응하는 재빠른 구조조정과 국제경제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경제는 심각한 실업률에 시달리면서 세계 2류 경제국가로 주저앉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경제가 위기이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보고서는 말해 주고 있다. 물론 우리 경제가 과도한 정부개입과 규제, 금융부문의 비효율성,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구조적 장애와 경영지식 및 기술격차로 역동성을 상실했다는 것은 새로운 지적은 아니다. 정작 우리가 위기라고 느껴야 하는 것은 한국경제가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애써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태의 본질과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고 변화를 유도해 나갈 비전과 전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개혁을 이끌 핵심주체마저 없다보니 실천은 없고 논의만 무성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부즈 앨런&해밀턴은 「그동안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수없이 많았음에 놀랐다. 그러나 개혁이 실제로 추진된 것은 거의 없다는 데 더욱 놀랐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도 얼마 전 새로운 도약을 위한 21세기 국가전략과제를 내놓았다. 정부와 공공부문의 개혁에서부터 민간부문의 산업기술 향상, 사회기반시설 확충, 공정경쟁촉진 등의 과제가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방향과 과제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과 노력이 결여돼 있다. 한국경제가 넛 크래커에서 부서지지 않고 빠져나와 새로운 도약과 제2의 경제기적을 일궈내기 위해서는 우선 과도기적 과제들을 극복하면서 구조적 장애요소를 빠른 시일내에 걷어내야 한다. 그 첫번째 과제는 정부개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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