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용사회, 개인정보가 샌다

  • 입력 1997년 10월 24일 20시 54분


현대사회는 바야흐로 신용과 정보화사회다. 그러나 신용사회가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에 부작용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개인정보의 유출이다. 개인의 사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보가 마구 새어 나가면서 엉뚱한 피해를 부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최근에는 경찰서 구청 세무서 전화국 등 공공기관으로부터 흘러나온 개인정보가 암암리에 거래되면서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 요즘 각 직장과 가정에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각종 전화나 우편물 홍수는 개인정보유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리고 그같은 개인정보는 끔찍한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개인에게는 누구나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될 비밀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헌법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인정보 보호는 정보화사회의 진전에 걸맞지 않게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 부작용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3년 전 살인집단 「지존파」 일당이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빼낸 고객정보를 토대로 범행대상을 물색했다는 것이나 이한영씨 피살사건이 이씨의 신상정보 유출로 가능했던 것처럼 개인정보유출은 전혀 예기치 않은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들어 크게 확산되고 있는 신용카드 범죄는 피해자가 무차별적이고 불특정 다수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경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가입자의 정보를 빼내 위조카드를 만들어 불법사용하는 신용카드범죄의 확산은 그것만으로도 신용사회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다. 이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져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이 법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개인정보보호 규정이어서 민간부문에서의 개인정보유출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 또한 전산화된 기록만을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를 보완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개인의 사생활을 광범위하게 보호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입법례가 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보완 못지않게 정보보안을 위한 관리조직의 설계와 교육 및 홍보 그리고 물리적 기술적 보안대책의 강구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여기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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