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최인호/돈과 정치

  • 입력 1997년 10월 16일 20시 18분


민주정치의 이상은 돈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나 그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결국 민주사회의 정치활동에 있어서 정치자금은 불가결의 요소다. 저비용 고효율의 정치체제가 바람직하지만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현실은 이와는 너무 딴판이었다. 정치인과 기업은 음성적 정치자금의 수수, 즉 정경유착을 통해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부패고리를 만들어왔고, 우리 정치체제 및 관행은 필요 이상 돈이 많이 들도록 만들어져 있다. 저비용 고효율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자금의 수수과정이 완전히 공개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면서 돈이 나갈 곳이 많으면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우리나라는 특히 선거 때 돈이 많이 들어가므로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 투명해야 할 수수 과정 ▼ 김영삼대통령은 대선자금, 이회창신한국당총재는 경선자금, 김대중국민회의총재는 이른바 비자금의 멍에를 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어찌 보면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고 고비용 저효율의 기존 정치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건국 이래 50년 가까이 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만을 보아왔던 우리 국민은 야당후보 당선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현재 흥분과 좌절, 당혹이 교차하는 심리적 부유(浮遊)상태에 빠져 있다. 14일 국회 법사위의 대검에 대한 국정감사를 기점으로 DJ비자금에 대해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는 검찰의 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필사의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신한국당은 정치자금을 받았던 전두환 노태우 두전직대통령과 김현철씨 처벌과의 형평성을 수사 착수 논거의 하나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돈을 받은 시점은 그들이 대통령 또는 대통령의 아들로 권력을 행사하던 때였고, 또한 개인적 축재가 인정되지만 DJ비자금의 경우는 단지 집권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에게 준 이른바 「보험료」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대가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좀더 지켜보아야 알겠지만 DJ는 개인적 축재가 없지 않으냐라는 반론도 무시할 수 없다. ▼ 경제학적으로 본 大選 ▼ 국민회의는 YS의 대선자금, 이회창총재의 신한국당 경선자금 수사 없이는 DJ비자금에 대한 수사 불가론을 주장하지만 이들 모두가 수사 대상이 되어 비리가 밝혀지면 공멸해도 좋다는 각오가 없다면 그들의 항변 또한 진실성이 없는 것이다. 다른 사건과 비교해 볼 때 이 정도 단서가 노출되었다면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대통령선거란 대권(大權)이라는 상품의 이동이다. 우리는 지금 권력의 시장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권이라는 상품이 여야간에 이동할 수도 있는 이른바 「정치적 자본주의」의 태동시점에 서 있다. 재화의 이동이 비로소 시작되는 초기 자본주의시장에서는 자유방임이 원칙이다. 권력이라는 상품시장도 그들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시장개입은 시장의 성숙을 막고 시장의 기둥마저 뿌리뽑게 될지도 모른다. 권력이라는 상품이동이 상례화한 성숙된 민주법치국가라면 선거 하루전이라도 위법행위의 혐의가 있다면 수사에 즉각 착수하는 것이 수사기관의 본연의 모습이고 이를 지체하면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현재 권력이라는 상품시장에서 검찰 수사의 충격과 파장을 감내할 민주주의의 역사와 역량을 갖추지 못한 점을 인정해야한다.비자금수사를 하지 않는 것을 검찰의 직무유기로 비난할 수 있는 시기를 우리는 언제쯤 맞게 될까. 최인호 (변호사·본사 대선기획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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