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권상/「고난의 행군」 김정일시대

  • 입력 1997년 10월 9일 20시 49분


마침내 김정일이 당총비서직에 「추대」되었다. 그동안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한 후 3년 3개월이 넘도록 형식상으로는 국정의 책임자가 없는 실로 해괴한 나라였는데 김정일의 당총비서 승계로 명실상부한 북한의 통치자가 태어났다. ▼ 기로에 선 北의 앞날 ▼ 김정일총비서가 다스리는 북한에 어떤 근본적이고 극적인 변화가 당장에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으나 그가 중국식으로 개방 개혁으로 방향을 돌리지 않는 한 조만간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데 많은 사람이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김정일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른바 「주체」의 깃발 아래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길인데 그것은 체제와 국가의 붕괴를 가속화할 뿐이다. 오늘의 식량위기와 경제파탄은 스탈린주의체제의 필연적 산물이다. 둘째로 본질적인 체제변화 없이 필요에 따라 약간씩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서방세계의 경제지원을 끌어들이고 그럼으로써 당면한 식량위기를 모면하고 나아가서는 경제적 소생을 기하겠다는 전술적인 궤도 수정이다. 세번째로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단행한 것처럼 대담하게 경제체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함으로써 외부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남북간의 평화공존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죽기 전에 이미 두번째 노선을 시도하여 특히 미국 일본과의 수교 제휴로 원조를 끌어들여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남북간의 대결구도를 포기하지 않고 핵공갈 또는 간헐적인 무장도발 등 약자의 「벼랑끝 외교」로 약간의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내부사정은 개선되지 않았고 국제환경이 호전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염치불구하고 남에게 구걸해야 할 정도로 날로 식량사정이 어려워지고 황장엽비서 장승길대사 등 고위관리의 망명이 잇따랐다. 체제붕괴의 조짐이다. 결국 북한의 남은 생존전략은 세번째 선택, 즉 대담한 시장경제의 도입과 대외개방으로 살길을 찾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한 미 일 등 외부세계의 지원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것은 1992년 남북한간에 합의한 불가침 화해협력의 기본합의원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김정일의 당비서 취임으로 당장에 본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3년간 그들이 받들던 김일성의 「유훈통치」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김정일 스스로 『사회주의 배신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품고 제국주의자들의 원조협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거듭 말한 바 있다. ▼ 「門」을 열어야 산다 ▼ 그러나 지난 8월 신포지역에서 우리 기술진이 경수로공사를 시작했고 나진지역에 자유무역지대가 설정된다. 우리 기업이 남포에 섬유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자본주의 공간이 예외적으로 상륙하고 있는 것이다. 북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미세한 전술적 변화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개방으로 북한의 경제가 되살아나고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중국식 개방을 시도할 때 정권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다. 김정일의 말마따나 끝없는 「고난의 행군」이다. 우리로서는 북의 점진적인 개방을 유도하는 소프트랜딩전략을 조심스럽게 밀고 갈 수밖에 없다. 북의 「돌연사」가 평화적 통일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1백20만 대군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강한 군사력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도적 지원 및 민간분야의 경제적인 협력관계를 심화시키면서 북한체제의 돌연사가 아니라 점진적인 안락사를 기다리는 인내력을 견지해야 하겠다. 박권상 (언론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