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업계 고교 살리기

  • 입력 1997년 9월 25일 19시 57분


서울시 교육청이 내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진로(進路)권고제」는 일찍부터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파악해 향후 직업선택을 도와주겠다는 취지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제도가 불쑥 튀어나온 배경에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실업계고교 기피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고교 진학 희망자들이 적성과 상관없이 인문계 고교로 몰리면서 갖가지 사회적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으므로 진로교육을 강화해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고육책(苦肉策)인 것이다. 현재 실업계 고교의 정원 비율은 전체 고교생의 37%선에 그치고 있지만 그나마 처음부터 실업고 진학을 원한 학생은 극소수다. 인문고 진학에서 밀려나는 중하위권 학생이 어쩔 수 없이 실업고를 택하는 사례가 많아 「공부를 잘하면 인문고, 나머지는 실업고 진학」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공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적성이나 취향과 관계없이 무조건 인문계 고교를 가야한다는 인식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팽배한 현실이다. 이에 따라 실업고의 정원미달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실업고 교사들의 무력감도 나날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올해 6만5천명이 실업계 고교에 입학했지만 내년에는 5만2천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실업고가 자칫 고사될 수도 있다는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산업현장의 일꾼을 양성하는 실업고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뿌리가 단단해야 나무가 제대로 커나갈 수 있듯이 산업사회의 기둥인 기능 기술인력의 양성 없이는 정상적인 국가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업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학력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직업관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실업고의 특성화 노력과 실업고 졸업생의 취업문호 확대, 과감한 정부의 투자 등 폭넓은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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