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후원 회상의 열차(上)]恨서린 8천㎞ 아픔『생생』

입력 1997-09-11 20:43수정 2009-09-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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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열차」. 1937년9월 옛소련 연해주지역 한인동포 18만명이 이역만리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던 길을 되밟아보는 추념의 행사다. 러시아 고려인협회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가 마련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한 이 행사가 11일밤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시작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이 열차는 8천여㎞를 달려 20일 중앙아시아 타슈켄트에 도착한다. 열흘간의 전과정을 3회에 걸쳐 현지 보도한다.》 1937년9월9일 밤 11시 블라디보스토크역. 고려인들을 실은 열차가 기적을 울렸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힘없는 민족의 무력감과 노여움만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1997년9월11일 밤. 「회상의 열차」 참가단 1백40여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모였다. 60년전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교수 스님 목사 작가 재야단체회원 기업임원과 고려인들로 구성된 참가단은 이에 앞서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북한 러시아접경의 하산, 포시예트와 아무르만을 지나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 참가단중 한사람인 고려대 강만길교수(사학)는 『연해주 동포들은 포시예트를 「목포」, 아무르만을 「금강만」, 블라디보스토크를 「해삼위」(海蔘衛)라고 불렀다』며 『특히 해삼위는 연해주 일대 독립운동을 펼치던 동포들의 구심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항에는 카프카스 카자흐 카타르 등 전통의상을 한 소수민족 대표와 러시아군, 언론 및 연해주정부관계자가 나왔다. 10일 참가단을 초청한 블라디미르 스테그니 연해주 부지사는 『회상의 열차를 위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와 보리스 님초프 부총리가 특별지시, 철도청장이 여정을 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연해주, 일본 언론들도 취재에 나서고 있었다. 이윤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공동대표는 『LG 현대 고합 삼성 대우 등 우리 기업들이 연해주로 진출하고 있어 연해주정부는 우리측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사나흘전 이주 통보 ▼ 참가단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인근 우수리스크를 돌며 고려인촌을 조성하고 있는 동포들을 만나 현지생활과 60년전의 실상을 들었다. 러시아한인돕기모임을 결성한 서울대 이광규교수(인류학)는 『스탈린 정권은 당시 독일과 일본이 동서 양면에서 협공할 것을 두려워했다』며 『고려인들이 일본과 내통하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설명했다. 19세기부터 연해주에 뿌리내리고 살던 18만 고려인들은 지난 37년 그날 이후 모조리 8천㎞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이송됐다. 이주 통보를 받은 것은 불과 사나흘전. 들녘의 수확과 재산권을 포기해야 하는 시한이었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이후 독일 체첸 유태인 등을 각지로 흩어놓는 스탈린 소수민족정책의 신호탄이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는 37년8월21일 강제이주 결의문을 통과시켰지만 이미 사전정지작업은 완료된 상태였다. 고려인 작가 기자 교사 등은 초여름부터 끌려가 처형당했다. 모두 1천5백여명. 러시아 고려인연합회장 올레그 이씨는 『당시 할아버지는 해삼위 한인교육연구소 부소장이었는데 카자흐로 옮긴 후 외할아버지와 함께 처형당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이 구체적 참상을 확인해 준 것은 93년 「한인 명예회복을 위한 법」이 통과된 다음이었다. ▼ 가축수송 열차에 태워 ▼ 고려인들을 태웠던 열차는 대부분 화물과 가축운반용이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의 이종훈박사는 『한량마다 두층, 각 층마다 두칸씩으로 나누어져 4,5가족이 태워졌다』며 『열차당 50량 안팎이 매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바닥에는 짐승들의 오물냄새가 가시지 않은 짚이 깔려 있었고 부르주이카라는 철제화로만이 유일한 배려였다. 등굽은 노인들, 뺨이 덜익은 어린이들이 먼저 죽어나갔다. 산모들은 사산하거나, 빈 젖을 문 신생아가 천천히 숨이 멎어가는 최후를 지켜봐야 했다. 이박사는 『당시 영아사망률이 60%를 상회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고려인 가운데는 37년생이 유독 적다. 기착지에서 손으로 흙을 파 혈육들의 이름 없는 묘지를 만들려 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달리기 시작한 기차를 놓쳐 가족들과 그대로 생이별해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참가단은 「회상의 열차」 출발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 조성 중인 신한촌을 찾아 「강제이주 60주년 기념비」 기공식을 가졌다. 우수리스크 아리랑농장장 미하일 김씨는 『90년 이후 각 공화국에서 민족주의가 달궈지자 적응 못한 고려인들이 2만명 이상 연해주로 돌아와 곳곳에 고려인 농장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농장에는 북한 노동자들도 있다. 역광장의 출발식에는 고려인과 러시아 및 연해주 정부 관계자 등 1천여명이 참석했다. 열차에는 러시아군 유일의 고려인 장성 블라디미르 차, 공군 「비행영웅」 올레그 최, 저명한 작가 아나톨리 김과 가수 리나 김 등 고려인측 참가단 40여명이 동승했다. 열차에 오른 서울 인왕교회 손동아목사(69)는 『어린 시절 신사참배 거부가족으로 몰려 옌볜 일대를 기차로 도망치던 기억이 난다』며 『옛날 동포들이 동원돼 삼림을 베어 열었던 시베리아 횡단선을 따라 고려인들이 끌려갔다니 목이 메어온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 농노처럼 끌려가 ▼ 열차는 밤 10시 출발했다. 60년전 고려인을 태운 열차는 끝없이 서진(西進)했다. 해는 항상 등 뒤에서 떴다. 패망한 조국. 「원수의 나라」와 내통할 우려가 있다는 누명을 쓰고 끌려가는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는 해는, 대륙에 가득한 일몰(日沒) 뿐이었다. 해지는 곳을 향해, 미지의 캄캄한 운명을 향해 고려인들은 그해 가을 농노처럼 끌려갔다. 〈블라디보스토크〓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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