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주택]조병수/평창동 「스튜디오 주택」

  • 입력 1997년 9월 9일 07시 57분


한 시대의 주택은 그 시대의 문화를 잘 나타낸다. 요즘 우리의 주거 건축문화를 잠시 들여다보면 어떻게 꾸며져 있고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자동차에 어떤 기능이 장착돼 있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데 기울이는 관심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어떻게 함께하며 살 것인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주는 주택인가에 관심을 더 가진다는 말이다. 주택은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피부로 닿으며 긴밀히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는 곳, 피곤할 때 돌아와 편히 쉬는 곳. 주거는 우리의 정서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다. 서울 평창동 「스튜디오 주택」에서는 사람이 있어야 할 본연의 위치인 자연과 건축 사이로 사람을 되돌려주고자 했다. 사람이 그 속에서 살며 쉬고 때로는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작업하다 비가 오면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한가할 때면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 또 피곤에 젖어 쉴 때면 창너머로 마당과 담이 찾아들고 그 위로 하늘도 차분히 들어와 복잡한 일상을 식혀주는 곳. 그런 곳을 구현하고 싶었다. 평창동 주택은 꺾여 있는 콘크리트 벽체와 그 뒤의 수평지붕선이 대조를 이루며 서로의 존재를 알게 하는 구조로 돼있다. 대문을 통해 들어서 다시 담을 따라 돌면 2층의 주거공간으로 오르게 된다. 2층에서는 담의 꺾인 선과 지붕의 수평선, 그리고 그 둘 사이로 멀리 산의 곡선이 들어오면서 세가지 선이 평화롭게 얽혀 삶이 그 사이에 존재하도록 했다. 자녀방들도 이러한 조망과 앞의 정원에 직접적이며 개방적으로 열려 있다. 따라서 이 방들은 거실 부엌이 있는 본채보다도 더욱 주변의 산 길 마당과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셈이다. 평창동 주택은 또 단순한 사각상자 형태로 해 경사지의 자유로운 선들과 대조를 이루어 주변의 유기성을 더욱 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외장과 내장재도 솔직하고 담백하게 처리해 외벽은 미송 합판 위에 오일 스테인으로, 내부는 석고보드 위에 수성페인트로 마감했다. 그러나 사람의 손이 직접 닿는 문 창 등에는 원목을 사용해 온화한 느낌이 나도록 했다. ▼ 조병수 (조병수건축연구소 소장)약력 △미국 하버드대 건축학 도시설계학 석사 △독일국립대 건축과 조교수 △미국 건축사무소 실무 △경기대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02―764―8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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