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보관장소도 없는 문화재 발굴

  • 입력 1997년 7월 31일 20시 57분


세계 고고학계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논쟁이 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경매회사들이 실시하는 골동품 경매가 문화재의 도굴이나 파괴를 부채질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문화재의 가치를 돈으로만 환산하다 보니까 이리저리 돈이 될만한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결국 땅속에 묻혀 있는 매장문화재의 파괴를 촉발시킨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주장이다. ▼영국의 한 경비회사가 최근 고미술품의 경매를 당분간 중단하기로 한 것도 고고학계의 거센 반발에 손을 든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TV에 방영중인 「쇼 진품명품」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소장중인 골동품이 얼마짜리인지를 감정해주는 이 프로그램은 한국고고학회가 부작용을 문제삼아 방송국에 중단을 요청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논쟁은 발굴된 문화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바에야 원래대로 땅속에 묻어두는 것이 낫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탓에 곳곳에 문화재가 매장되어 있다. 특히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 일대는 어디를 파더라도 유물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매장문화재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유물이 출토된다. 하지만 발굴만 해놓고 정작 사후관리는 엉망인 경우가 많다. 지난 20년간 경주에서 발굴된 문화재 7만점이 국립박물관의 임시창고에 방치돼 훼손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안타깝게 들린다. ▼보관할 장소도 마련하지 못한 채 개발에 밀려 발굴부터 시작한 불가피한 사정도 있을 것이다. 또 처음 발굴할 때는 요란하다가 뒤처리에는 나몰라라 하는 전시행정 탓도 있을 것이다. 각 대학박물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런 정도라면 학자들의 주장대로 문화재 보존기술이 보다 발달할 후세로 발굴작업을 넘기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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