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주택]분당 서현동 「내심경」

  • 입력 1997년 6월 30일 07시 57분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또다른 유형의 자연일 수 있다. 도시의 모습은 자연의 여러 요소가 겹쳐진 것처럼 중첩돼 있다. 도시는 오랜 시간을 두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의 중첩으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겹침을 지니고 있다. 또 필사본처럼 많은 기록들로 채워지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들은 어느 사이엔가 새로운 필사를 시작했으며 이 필사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가고 있다. 이 시대 대표적 주거의 표상으로 겹겹이 쌓인 아파트 군락 틈새에도 텃밭은 있는 것일까. 신도시 분당의 지독한 모습의 이면에도 작지만 군데군데 일궈진 텃밭과도 같은 단독주거군이 있다. 분당 서현동의 산자락에 자연을 밀어내고 다시 자연을 그리는 군락의 한 가장자리에 「내심경」은 자리하고 있다. 내심경이 이루어 내려한 건축공간은 바로 내적으로 충만한 겹침을 통해 독자성이 강한 내재적 공간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감기고 회전하면서 펼쳐진 여러개의 높낮이가 다른 벽들은 높은 밀도의 도시구획에서 밀려오는 소란을 막고 동시에 근원경의 도시와 자연을 끌어내어 가족에게 독자적인 단란의 공간을 만들었다. 투시형 대문안의 진입 공간에서 닫혀진 시선은 우측으로 꺾이면서 하늘로 뚫린 마루마당에 다다르게 돼있다. 이곳에서 다시 시선은 외부의 진입공간으로 열리며 벽과 외형을 수식하고 있는 목재기둥 틈으로 호젓이 놓인 몇개의 새우젓 독과 항아리가 질박한 삶을 보여주는 미디어로 작용한다. 마루마당은 현관에서 거실에 이르는 연결공간의 띠로 감싸여 있으며 긴 과정을 거쳐 다다른 거실은 깊숙하기보다는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뻗친 돌출된 개방공간으로 돼있다. 시선은 자유롭되 연결된 틀 안에서 이 가족공간은 내밀하며 응접공간은 격상된다. 자녀와 부부의 침실영역은 외부의 마루마당과 계단을 사이로 연결되는 다리처럼 건너야 하는 영역성을 지녀 서로의 비중을 높이고 위계를 갖게 한다. 다락은 서재로 만들어져 읽다 쓰다 졸다 벽을 보다 지쳐 잠든다 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할 곳이다. 분당의 작은 집인 내심경이 침묵과 자유의 위상을 지닌 평범한 집, 재산으로 평가받지 않는 집으로 이 시대 주거의 한 모습이 되길 기대한다. ▼약력 △한양대 건축학과졸 △영국AA 건축학교 수학△4.3그룹전 13인의 작가전 김수근 10주기전 출품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스튜디오 메타 대표건축가 0652―250―5114 김병윤(백제예술대 건축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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