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금융당국의 오만한 탁상행정

  • 입력 1997년 6월 25일 20시 18분


은행감독원은 25일 「금융애로 신고센터」를 설치한 지 한달 만에 폐쇄하기로 했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금융정책 당국의 「탁상행정」이 거울 보듯 드러난다. 종합금융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에서 경쟁적으로 대출금을 회수하자 姜慶植(강경식)부총리는 지난달 23일 종금사와 할부금융사 사장단을 불러모았다. 강부총리는 『대출을 불시에 중단하거나 회수해 금융위기를 부르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특별검사를 하겠다』며 『금융질서 문란행위를 신고받을 센터를 은행감독원에 설치해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은감원은 기민하게 「금융애로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그러나 한달 동안 신고된 것은 고작 11건. 그것도 「은행이 진성어음을 잘 결제해주지 않는다」 「할부금융사가 담보보강을 요구하며 어음을 할인해주지 않는다」는 등 대출금 회수와는 동떨어진 내용이 대부분.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은감원은 신고센터를 계속 유지하기도, 곧바로 폐쇄하기도 어렵게 됐다. 결국 은감원은 표면상 『좀더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존 금융분쟁상담실에서 일괄 취급하겠다』면서 신고센터를 없앴다. 금융계는 『한달만에 슬그머니 물러날 것이면서 엄포는 왜 놓았나』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말 기업들의 금융애로가 수그러졌느냐는 점이다. 기아그룹 계열사인 아시아자동차의 자금압박은 종금사들의 경쟁적인 대출금 회수와 은행의 기업어음 할인기피가 빚은 합작품이라는 것을 금융계에서는 모두 알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부총리의 엄포를 정말 두려워하는 금융기관은 없다』며 『밑바닥 움직임은 알지도 못하면서 「너희들 당해 볼래」하는 식의 발상으로는 신용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고 꼬집었다. 윤희상<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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