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스물아홉」의 비만

  • 입력 1997년 6월 10일 10시 13분


『아가, 몇살이지?』 어린아이를 보면 어른들은 대개 이런 질문을 한다. 『세살』 미리 엄마에게 훈련을 받은 아이는 귀여운 목소리로 정답을 댄다. 『아이구, 예쁘기도 하지. 그럼 오빠는 몇살?』 『열두살』 『오빠하고 차이가 많이 나는구나』 그러면서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는 아내를 한 번 본다. 아내는 그저 웃음으로 답할 뿐이다. 『그래, 엄마는 몇살이야?』 조금 지나친 질문이다. 그렇지만 아내는 이미 거기까지 대비를 해두었다. 『스물아홉살』 아주머니는 이내 놀란 눈이 된다.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그러면 열여섯살 때 첫 아이를?」. 분위기를 파악한 큰 아이가 웃으며 말한다. 『우리 엄마는 제가 세살적에도 스물아홉이었어요』 그제야 아주머니의 얼굴이 풀어진다. 저녁을 먹으며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조금 심각한 표정이 되더니 한 마디 한다. 『요즘 들어 자꾸 붓는 것 같아요』 『그래? 언제부터 그러는데?』 그렇게 부었다고 느끼지 못했던 터라 그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한 달쯤 되었나봐요』 『어디가 부었는데?』 『어디라고 하기는 무엇한데, 특히 얼굴이 그래요』 『그래, 별 일 아닐테니까 조금 더 지내봐』 내심 짚이는 것이 있어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아내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이지만 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답을 이미 알고 있기에 더 물어 볼 필요가 없을 뿐이었다. 굳이 직업의식을 발휘하자면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 가령 『언제 많이 붓지, 아침이야 저녁이야?』라고 물어야 하는데, 그러면 아내는 『특별한 때가 없고 하루 종일 부어 있어요』라고 할 것이다. 또 『숨이 차거나 소변보는데 불편해?』 그러면 『그런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겠지만, 자세히 물어보면 숨을 헉헉대는 것은 아니고 가슴이 답답한 정도이고,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고 할 것이다. 제대로 물어보자면 한이 없고 대략 이런 정도인데 하여간 묻지 않아도 알만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게 무슨 병이냐고? 병은 무슨…. 살이 조금 찐 것이다. 그러니 그냥 두라고 할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며칠이 지난 후 아내는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부은 게 아니고 살이 찐 것 같아요』 『진작부터 그런 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요?』 『굳이 충격을 줄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당신은 적당한 정도니까』 사실 그랬다. 아내는 살이 찐 편이 아니었다. 정말 스물 아홉 살이라면 몰라도. 아내가 살이 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시각 공해」탓일 것이다. 부쩍 많아진 미인대회에다가 모델들이 나오는 드라마까지 TV 화면을 어지럽히니그럴수밖에. 하지만 거기 나오는사람들은 정상보다는 기형에가깝게마른 사람들인데…. 황인홍〈한림대 교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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