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반환 D-30]가요「홍콩아가씨」…홍콩감기…이소룡…

  • 입력 1997년 6월 1일 08시 23분


「별들이/소근대는/홍콩의 밤거리/나는야/꿈을 꾸며/꽃파는 아가씨…」. 중장년층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요 「홍콩아가씨」. 홍콩아가씨는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52년 당시 여가수 금사향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불러 크게 히트한 곡. 전쟁이 끝나고 폐허속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50, 60년대, 한국인들에겐 홍콩이라는 말은 곧 자유 동경 향락 풍요로움을 뜻했다. 70년대 초반의 유행어 「홍콩간다」는 말도 이러한 이미지에서 비롯된 은어. 홍콩 환락가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나온 말로 「기분이 좋아 해롱거린다」 「좋은데 간다」 「뿅간다」 등의 뜻으로 쓰였다. 전국을 독감의 공포에 몰아넣으면서 악명을 떨친 「홍콩감기」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 60년대말∼70년대초는 밀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지리적으로도 가까운데다 자유무역항이었던 탓에 홍콩에서 상당한 밀수품이 국내로 들어왔다. 이같이 밀수가 성행함에 따라 주로 악역을 맡았던 영화배우 허장강의 『장마담, 홍콩에서 배만 들어오면…』이라는 대사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78년에는 여배우 최은희씨가 홍콩에서 납북된데 이어 남편 신상옥감독도 역시 홍콩에서 납북돼 큰 충격을 주었다. 87년 여행자율화조치와 함께 「쇼핑천국」인 홍콩을 찾는 사람이 급증했다. 일부 강남주부들 사이에서는 홍콩의 세일기간에 맞춰 떠나는 「세일관광」이 성행하기도 했다. 홍콩이 우리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그 1등공신은 홍콩영화였다. 물론 이전에도 이소룡 성룡 주연의 영화가 인기를 끌었지만 홍콩영화가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면서 폭발적인 붐을 일으킨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암흑가의 의리와 복수를 그린 「홍콩누아르」가 그 첨병이었다. 특히 홍콩은 탈북자들의 「중간 안착지(安着地)」였다. 작년 10월 金慶鎬(김경호)씨 일가족 17명이 홍콩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고 작가 장해성 중국과학원 정갑렬박사도 이곳을 통해 망명했다. 94년 탈북, 홍콩을 거쳐 서울에 온 洪眞熙(홍진희)씨의 가족 3명도 역시 홍콩을 통해 서울에 왔다. 이제 자유의 관문인 홍콩은 문을 닫게 됐다. 반환후의 「차이나 홍콩」은 어떤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궁금하다. 〈강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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