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유한수/한국인의 「잔치 체질」

  • 입력 1997년 5월 29일 19시 56분


김현철씨 사건을 본 어느 외국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게 이해가 안간다. 그리고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사람이 구속된다는 게 더욱 이해가 안간다』 우리나라에서 이해가 안가는 일이 어디 한 둘인가. 5개월을 수사해도 아직도 끝이 나지 않는 한보사태도 그 중 하나다. 도대체 얼마를 더 파헤쳐야 만족을 할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한보사태의 수사를 가리켜 우리 문화 특유의 「잔치체질」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 푸짐하지 못하면 실망 ▼ 서양사람들은 별로 차린 것도 없이 사람들을 불러 조촐한 파티를 자주 한다. 먹는 게 목적이 아니고 대화가 주 목적이다. 맥주 몇 병과 안주 부스러기를 좀 갖다놓고 모여서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한다. 반면에 우리는 한 상 푸짐하게 차리지 않으면 참석자들이 상당히 실망한다. 「한보잔치」도 마찬가지다. 이왕 판을 벌였으니 푸짐한 요리가 나와야지 적당히 때우려다가는 큰일나게 되어 있다. 검찰은 지금 주방에서 손님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아마도 끝장을 보아야 손님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설 것이다. 이 와중에 경제는, 국제수지는 누가 챙기고 있는지 걱정될 때가 많다. 흔히 한보를 정경유착형 경영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한다. 정경유착은 물론 나쁘다. 그러나 과거 우리경제에서 정경유착을 하지 않고 살아 남았을 재벌이 있었는지 의문이 간다. 따지고 보면 정경유착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업인들이 정치권에 접근해서 정보를 얻거나 이권을 얻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많이 있는 일이다. 선진국 기업들도 탈세를 하며 뇌물을 준다. 오죽하면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외국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는 행위를 처벌하자고 제안했을까. 「부자클럽」이라는 OECD가 회원국들에 「뇌물주지말자」고 호소하는 것을 보면 부자나라들도 우리와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해 재벌그룹들이 죽기살기식으로 로비를 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이제 이만큼 홍역을 치렀으니 앞으로 정경유착은 점차 완화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그런데 정경유착말고도 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절대 안 망할 것 같았던 대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에 공통적인 것은 2세경영인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험도 없는 30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재벌그룹의 경영을 맡기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이 많다. 이에 대해 재벌기업들은 『내 재산을 내아들에게 물려주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 기업 정치유착 반성을 ▼ 물론 재산을 물려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경영권은 별개의 문제다. 재벌의 총수라고 하더라도 지분은 30% 내외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일반주주, 특히 금융기관 등 기관투자가가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재벌기업들은 빚이 많다. 자기자본의 3,4배 정도의 빚을 끌어쓰고 있다. 은행 빚을 잔뜩 끌어쓰고 부도가 난다면 이미 가족 문제가 아니다. 은행 예금주 거래업체 등 피해자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재무구조가 나쁘거나 일정액 이상의 은행빚이 있는 기업이 최고경영자를 선임할 때는 은행이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기업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건 가슴아픈 일이다. 유한수(포스코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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