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골프 교수」

  • 입력 1997년 4월 29일 09시 03분


『이번 주말에 같이 운동이나 하러 가지』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사뭇 유혹적이다. 운동이라, 그거 괜찮지. 『좋지. 그런데 무슨 운동?』 『응…?』 상대방은 갑자기 당황하고 만다. 한 달이면 두어 차례씩 걸려오는 이런 전화가 골프를 하러 가자는 것인 줄 모르는 바 아니다. 골프가 무슨 운동의 대표격이나 되는 것처럼 부르는 것이 못마땅해서였다. 『이 사람아 왜 이래. 한 자리 비어서 한 번 모시려고 그러는데』 『실은 내가 시내에 있어야 될 사정때문에…』 상대방의 호의에 면박을 주고 그나마 거절을 해버리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나는 골프장이라고는 구경도 못한 사람이니. 나를 아는 사람들 중의 몇몇은 내가 골프를 잘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들은 내가 골프를 못한다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도 도무지 믿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을 부리는 것이라고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다. 물론 그간에 사정이 있기는 하다. 몇 년 전에 골프 연습을 하다가 어깨와 팔꿈치에 이상이 생긴 사람을 고쳐준 적이 있었다. 의사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얼마 뒤 요즘 공이 잘 맞지 않는다는 사람에게 자세에 대한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그 사람이 그 뒤에 실력이 조금 늘었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런 정도다. 그 이후에 나는 숨은 실력자가 되어버렸다. 한번 그렇게 믿은 사람에게는 내 말이 통하지를 않았다. 『저도 웬만큼은 치는데, 다른 사람의 자세를 고쳐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괜히 그러지 마시고 저희들하고도 한번 가시죠』 이 정도가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답답한 노릇이다. 속사정을 아는 친구 하나는 나를 거의 사기꾼과 동일한 수준으로 몰아붙인다. 『다 자네가 잘못한 거야. 알지도 못하는 것을 왜 가르쳐줘』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까 가르쳐줬지 모르면 어떻게 가르쳐』 『그게 아니고 쳐보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조언을 하냐고』 나도 할말이 있다. 『이봐, 내 직업이 교수야』 『그렇다고 자네가 골프 교수는 아니잖아』 『내 직업은 내가 해 본 것만을 가르칠 수는 없어』 『그래도 자네가 나빠』 참으로 억울하기 그지없다. 나는 학생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시대의 의학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내가 그 시대에 살았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나더러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에 가보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교수는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요즘 일부 교수들은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 부산해졌다고 한다. 누군가 또 머리를 빌려달라고 할까 봐 미리 준비하는 모양이다. 교수는 교수일뿐인데. 황인홍〈한림대 교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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