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 강연 요지]『이념-인종 대립시대는 끝났다』

입력 1997-03-29 08:28수정 2009-09-2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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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공종식·김정수기자] 시몬 페레스 전이스라엘총리는 28일 고려대에서 가진 仁村(인촌)기념강좌에서 메모지 한장 없이 1시간 20분동안 「무원고강연」을 했다. 엔테베구출작전의 진두지휘자라는 명성과는 달리 이날 페레스 전총리가 한 강연의 화두는 「평화」와 「지구촌」이었다. 다음은 이날 강연의 요지. ▼ 한국 단기간 비약적 성장 ▼ 한국은 지난 48년 이스라엘과 똑같은 시기에 독립국가를 세워서 그런지 느낌이 남다르다. 한국은 지난 몇십년동안에 걸쳐 가난에서 탈피,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내 생각으로는 앞으로 5∼10년 사이에 반드시 통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 10∼15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보자. 그 사이에 공산주의가 붕괴했다. 세계는 더이상 공산주의 대(對) 민주주의, 동구 대 서구의 구별이 무의미해졌다. 이제 어디에 사는지와 피부색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지구촌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공산주의의 붕괴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나는 서재에 공산주의 관련 유명 저서를 다 갖춰놓고 있다. 공산주의는 머리가 아주 뛰어난 이론가들이 만들어서 그런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다. 그런데 왜 공산주의가 붕괴했는가. 외부침략이나 국제적인 압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이스라엘을 비교해보자. 러시아는 수많은 자원이 있는 반면 일본은 자원빈국이다. 러시아 영토는 일본의 45배, 이스라엘의 1천배다. 일례로 러시아에는 3백만개의 호수가 있지만 이스라엘에는 호수가 단 두개뿐인데 그중 하나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해(死海)다. 그런데 왜 러시아는 못사는가. 그것은 러시아체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대단히 똑똑한데 러시아체제가 똑똑하지 못했던 것이다. 러시아는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한 뒤 이스라엘젖소를 수입해간 적이 있다. 이스라엘 젖소의 우유 생산량이 러시아 젖소의 3배였기 때문이다. 똑같은 젖소가 이처럼 우유를 다르게 생산하는 이유는 바로 젖소를 키우는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붕괴로 세계가 지구촌이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기회도 있지만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정보와 과학지식이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도 있지만 파괴력을 갖춘 미사일도 국경을 넘어 마음대로 갈 수 있다. 과거에는 분명한 영토와 국민이 있는 「적(敵)」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이처럼 분명한 적이 있는 나라가 없다. 그대신 특별한 영토나 국민은 없지만 적보다 더 복잡한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냉전의 붕괴로 인해 국지분쟁이나 지역갈등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중동지역에서는 이슬람교근본주의 세력이 끊임없이 테러행위를 하면서 세력확장을 노리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대통령과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증오로 가득찬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위한 특별 전략을 세워야 한다. 고(故)라빈이스라엘총리와 나는 우리가 가진 경력과 능력을 이용, 과거의 적을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계속 이스라엘을 증오해왔고 아라파트도 마찬가지였다. 평화협상은 참 어렵다. 상대방도 어떤 목적이 있고 뭔가 이뤄내야 하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서 어느 한쪽은 타협과 양보를 해야 한다. 또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왜 우리땅과 권리를 적에게 넘겨주느냐』 『적에게 왜 잘 대해주느냐』는 논쟁이 따르게 마련이다. 지난해 라빈총리가 암살당하던 순간은 내 생애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었다. 나는 라빈과 40년동안 친구사이였지만 라빈이 노래하는 모습을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라빈도 「알아주는 음치」였기 때문에 우리는 노래를 적은 종이를 들고 집회에 모인 젊은이들과 「평화의 노래」를 합창했다. 노래가 끝날 무렵 라빈이 「평화의 노래」가 적힌 종이를 다시 접어 가슴에 넣은지 3분이 지나지 않아 총탄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혼돈 그 자체였고 눈물바다였다. ▼ 국방력 이젠 국가힘 못돼 ▼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꼭 해야할 임무는 진정한 평화정착을 위해서 오슬로협정의 두번째 단계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은 성지(聖地)로부터 우리 군대를 철수하는 것이어서 국내에서 엄청난 비난여론을 감수해야 했다. 당시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잇단 폭탄테러를 감행했고 예루살렘의 내 사무실 부근에서도 폭탄이 터졌다. 국민들이 나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소리가 들렸다. 라빈이 암살당한 뒤 4일째 되던 날 또다시 폭탄테러가 벌어졌다. 이때 나는 선거에서의 패배를 직감했다. 결국 선거에서 1만5천표 차이로 패배를 맛봐야 했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에 기회와 땅과 생명을 주는 것은 정치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대가없이 평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평화를 천천히 이룰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답은 『노』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은 이미 평화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어떤 정부도 자치정부수립을 향한 팔레스타인인의 「평화의 도정」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나의 경험을 토대로 몇가지 견해를 말하겠다. 우선 냉전이 끝난 뒤 국방력으로 국가의 힘을 결정짓는 시대는 갔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교육 과학 기술 정보가 한 국가의 힘을 결정하게 된다. 앞으로의 세계는 또 「지배」의 세계에서 벗어나 「창조」와 「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정책결정은 지배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두가지 요소로 이뤄졌다. 하나는 모든 이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며 또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증오」서 「자유」의 시대로 ▼ 기성세대는 가슴에 「증오」를 품고 살아온 세대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이와 다르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있다. 여러분은 기성세대의 말이나 역사책 속에서 나오는 말들을 너무 믿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가 오게 마련이다. 끝으로 젊은 여러분들에게 충고 한마디만 하겠다. 아는법(How To Know)을 배우려하지 말고 배우는 방법(How To Learn)을 익혀야 한다.지식은 너무 빨리 변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번영과 화합을 추구하는 시대다. 우리세대에서 평화의 대가를 치른다면 우리 이후의 세대는 보다 나은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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