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최정환/「문화쇄국주의」는 곤란하다

입력 1997-03-17 08:25수정 2009-09-27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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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인감독 하야시 가이조(林海象)는 뉴욕비평가협회가 주는 상을 받은 바 있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감독이다. 작년에 일본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일본 친구들과 함께 하야시감독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술이 거나해진 하야시감독은 자신이 재일교포 3세라고 고백하여 좌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의 유명한 가수나 배우 중에 한국계가 많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막상 직접 그런 고백을 듣고 나니 마치 할리우드를 장악한 유태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분되었다.

그런 하야시감독이 안타까워했던 것 중의 하나는 한국이 일본에 대하여 「문화쇄국」정책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대만에 영화사를 만들어놓고 대만과의 합작영화를 기획하고 있던터였다.

영세하고 시장도 좁은 아시아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일 중 3국이 각국의 최고 배우들과 최고 감독들을 내세워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하여 세계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우리는 민족감정에 맞지 않고 무역역조가 심화된다는 이유로 일본문화의 유입을 불허하고 있다. 과거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길목이던 한반도가 이제는 아시아 문화교류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하야시감독의 소망처럼 우리나라의 감독이 일본 작가의 시나리오로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이를 세계에 배급하는 날이 오기를 꿈꾸는 것은 단지 식민지의 아픔을 모르는 전후세대의 철없는 생각일까.

일본과의 식민지 역사 청산의 문제는 미래를 향한 길목을 여는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반드시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문화를 통해서 그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그 한가지 해법이 될 것이다.

최정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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