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갈등 탐구]입장 바꾸면 대화 풀린다

  • 입력 1997년 3월 12일 08시 04분


『밥 줘』 『애는?』 『자자』 무뚝뚝한 경상도출신 남편이 귀가해 잠들 때까지 아내에게 하는 말은 이 세마디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김모씨(41·회사원)부부는 한지붕아래 살지만 감정적으로는 별거상태이다. 김씨는 경상도사람이 아닌데도 아내와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두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교묘히 피해간다. 아예 아이문제외에는 서로 얘기하지 않기로 묵계가 돼있는 듯이 지낸다. 요즘 남자들에게 인기를 얻고있는 「아버지」라는 소설의 가장 중요한 주제도 역시 대화의 단절이 가져오는 비극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무능탓에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무시당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은 이와는 달리 병과 죽음이라는 문제까지도 숨기면서 가족과 대화하려하지 않고 술에만 매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절망하는 것이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계속 은폐하면 대화의 단절이라는 무서운 결과에 이를 수 있다. 이런 부부는 대개 서로 자기만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린다는 아집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쉬운 예로 남편은 아내의 바가지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말하고 아내는 남편이 늦게 들어오기에 바가지를 긁는다고 말한다. 자기입장에서만 보면 원인과 결과가 당연히 다르고 대화가 되지 않게 마련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불행한 결혼생활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완벽하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처방은 역지사지(易地思之)뿐이다. 상대가 보기에 나도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면 쉽게 대화가 될 수도 있다. 「네가 먼저 고쳐라」하는 태도는 금물이다. 양창순 (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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