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각차만 확인한 대표연설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어제까지 사흘간 국회에서 진행된 여야 3당 대표연설은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기엔 미흡했다. 우선 鄧小平(등소평) 사망과 黃長燁(황장엽)비서 망명, 李韓永(이한영)씨 피격사건 및 검찰의 한보사건 수사결과 발표 등 큰 소식이 쏟아진데다 기본적으로는 3당이 판박이하듯 그간의 주장을 되풀이 강조한 탓이다. 여야 모두 지금이 국가적 위기라는 데는 인식이 같았으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은 제각각이었고 책임소재에 대해서도 시각차가 뚜렷했다. 대표연설을 하는 동안은 물론 끝난 후에도 여야가 상대측의 주장을 깎아내리고 경청하지 않는 자세를 보인 것도 유감이다. 우리 정치가 칭찬에는 인색하고 사사건건 상대방 트집잡기에만 열중하는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자기와 의견이 같지 않더라도 끝까지 들어주고 그를 바탕으로 국가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중지(衆智)를 모아야 할텐데 그런 자세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상대측이 대표연설에서 주장한 내용을 되새겨보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정치적 여유를 보여야 한다. 여야는 이번 대표연설에서 한보사태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수습방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신한국당의 李洪九(이홍구)대표는 한보사건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심어진 부패구조와 구태의연한 정경유착에서 비롯됐다』며 정치권 전체가 책임질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회의 申樂均(신낙균)부총재와 자민련 金鍾泌(김종필)총재는 사건의 근본원인은 권력과 재벌, 금융계가 한통이된 비리구조에 있다며 정치권 전체가 아닌 현정권 내부의 부패임을 지적했다. 한보사건을 보는 의견이 다른 만큼 내놓은 해결책도 판이했다. 여당은 정치자금법 개정 등 제도개선에 주안(主眼)을 두고 3김정치의 폐해로 지적된 붕당정치 대권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측은 철저한 진상규명없는 한보사태의 해결은 불가능하므로 특별검사제를 통한 전면 재수사와 국정조사, 청문회의 TV생중계를 강조했다. 특히 신부총재는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 차남 賢哲(현철)씨의 한보연루 의혹을 강도높게 제기하면서 여당의 92년 대선자금으로 한보 돈이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김총재도 김대통령이나 현철씨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92년 대선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안보상황이나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에서도 여야는 평행선을 달렸지만 다급한 한보 의혹을 푸는 방법에 대해서도 판이한 시각차를 보였다. 많은 국민들은 지금 검찰의 한보 수사결과를 못믿고 국회 국정조사에서 철저히 진상을 밝혀줄 것을 바라고 있다. 여야는 상대당 대표연설에서 수용할 부분은 받아들임으로써 한보사태를 풀어나갈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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