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풍요의 원점」 정월대보름

  • 입력 1997년 2월 20일 20시 01분


▼동네사람들이 농악대를 만들어 집집마다 걸립을 한다. 부엌의 조왕신, 장독대의 천륭신, 우물의 용왕신, 마굿간의 가축신, 변소의 측신, 대문의 문신에게 농악을 울리고 마당을 빙 돌며 지신과 성주신을 흥겹게 한다. 그렇게 동네를 한바퀴 돌며 거둔 쌀과 짚단으로 떡을 하고 새끼를 꼬아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바탕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여자편이 이긴다. 전통 정월 대보름 풍속이다 ▼내일이 바로 정월 대보름이다. 이날은 지신밟기 줄다리기 동제(洞祭)등 각종 기복(祈福) 액막이 구충(驅蟲)행사를 벌이며 한해의 풍요를 빈다. 보름 전날인 열나흗날 저녁에는 집집마다 등잔불을 밝게 켜놓고 밤을 새운다. 마치 섣달 그믐날 밤 수세(守歲)하는 것과 같다. 한해의 첫 보름달이 밝아야 그 해 운수가 좋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정월 대보름은 한해의 실질적인 시작이자 풍요의 원점이었다 ▼대보름날은 잡곡밥과 약밥을 먹으며 오곡백과의 풍년을 빌고 갖가지 나물반찬을 차려 풍요로운 가을을 기원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여름 건강을 빌며 더위를 팔고 부럼을 까고 이명주(耳明酒)를 마시며 튼튼한 이, 밝은 귀를 기원했다. 달집태우기 쥐불놓이 제웅치기 모기불놓이 짚단쌓기 등 각종 제의 놀이와 함께 농점(農占)도 행해졌다. 오늘날 도시생활에서는 이런 모습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대보름과 관계된 세시풍속은 대략 50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일년 열두달 세시풍속이 통틀어 2백가지에 채 못미치는 것에 비하면 전통풍속에서 이 날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온갖 재앙이 줄줄이 겹치는 올해도 큰 명절 정월 대보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번 대보름에는 오늘 열나흗날 밤부터 집집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전통 액막이 놀이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