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金대통령은 결단 내리라

  • 입력 1997년 2월 12일 20시 23분


한보비리의 진상과 외압의 실체가 누구인가를 두고나라안이 의혹과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최측근 가신(家臣) 출신인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의원이 한보의 검은돈8억원을 받고 은행에 거액대출 압력을 넣은혐의로 구속됐지만 그가 이 사건의 주범일 것으로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이러한 때에 야당이 김대통령 차남 賢哲(현철)씨의 한보 직접 관련설을 공식적으로 거론하면서 「구속이나 해외추방」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현철씨의 직접 관련여부가 국민적 의혹의 초점이다. 취임이래 도덕성 청렴성을 줄곧 역설해온 김대통령으로서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심각한 정부의 위기이자 정권의 위기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외압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국가적 위기로까지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이 엄청난 의혹을 씻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대통령이 먼저 결단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다짐한 그대로 성역(聖域)없는 수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비록 자신의 가족이라도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 본란은 지난 2월2일자 「김대통령은 마음 비우라」는 사설에서 지금의 이 국가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김대통령이 위기의 본질을 바로 볼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김대통령은 철저한 수사로 있는 그대로의 진상을 규명 공개하고 정권재창출에 연연하지 말 것이며 국내정치에 초연할 것을 권고했다. 또 2월4일자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는 사설에서는 이번 사태가 기본적으로 현정부의 책임임을 지적하고 권력차원의 외압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정부의 자체조사가 있어야 마땅함을 강조했다. 특히 그 다음날 「누가 은행장에 압력넣었나」라는 사설은 이번에도 검찰이 수서사건 때처럼 축소 은폐수사로 끝낸다면, 그래서 수사종결 뒤에도 의혹이 계속 증폭된다면 다음 정권에서 재수사를 해야할지 모른다고 지적하고 검찰의 명예를 위해서나, 김대통령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도 성역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그동안 본란이 주장해 온 바를 되풀이 강조하는 이유는 검찰수사가 일반의 기대와는 달리 사건의 본질과 핵심을 벗어나 희생양만 만들면서 빗나가고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한보에 5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대출을 가능케 한 외압의 주범격으로 검찰이 밝힌 홍인길의원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검찰에 불려가기전 『왜 하필 나냐』면서 스스로 「깃털」이라고 자조(自嘲)한 홍의원이 외압의 최종 배후이자 주범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권세력의 실세이자 가신출신인 홍의원 자신이 깃털이라면 몸체가 따로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몸체의 실체는 과연 누구인가. 거기에다 또다른 가신출신이자 대선예비후보인 金德龍(김덕룡)의원까지 정치적 음모설을 들고나와 검찰수사 방향에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누가 깃털이고 누가 몸체인지 국민들이 의아해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홍인길 鄭在哲(정채철)의원을 구속한데 이어 權魯甲(권노갑)의원과 金佑錫(김우석)내무장관 신한국당 黃秉泰(황병태)의원을 소환,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조만간 수사를 매듭지을 것처럼 비친다. 특혜대출 주범으로 지목된 홍의원은 여권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영향력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홍의원 정도를 외압의 핵심인물로 단정하고 수사를 마무리한다면 수서사건 수사의 재판(再版)이라는 비난이 일 것이다. 그럴 때의 사회적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홍의원이 한보로부터 8억원을 받았다는 시기는 청와대 총무수석을 그만둔 몇달 뒤인 지난해 2월에서 12월 사이다. 그러나 한보그룹에 대한 특혜대출은 그보다 2년전인 94년부터 급격하게 늘어났다. 홍의원이 청와대 총무수석으로 재직하던 때다. 홍의원이 주범이고 96년에만 돈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94,95년의 엄청난 특혜대출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그 기간의 특혜대출에는 또다른 권력실체가 작용한 것인가. 아니면 홍의원의 청와대 재직당시 대출압력과 그 배후는 검찰이 덮어두고 있다는 의혹이 일게 된다. 5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대출됐다면 그 과정의 비리도 비리지만 무엇보다 어떤 판단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그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 잘못이 있는 사람을 문책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고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내놓는 식이 되면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까지 병행처리되지 않으면 검찰수사는 끝났다고 보기 어렵다. 김대통령은 문민정부출범과 더불어 부정부패척결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개혁사정(司正)을 강도높게 몰아쳐왔다. 그럼에도 정작 지난해 張學魯(장학로) 전 청와대 부속실장의 독직에 이어 이번 또다시 홍의원의 엄청난 비리가 드러났다. 김대통령 자신은 아무리 돈 한 푼 안받고 칼국수를 먹는다 해도 가신이나 수족이랄 수 있는 최측근들이 이렇게 부패해서야 김대통령의 국정수행능력이 의심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문민정부의 존립근거인 청렴성과 도덕성 또한 무너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이 꼴이 되었는가. 김대통령 자신이 시대에 맞지 않는 측근 가신정치를 버리지 못하고 혼자서 독선 독주로 일관해온 결과 한보사태에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측근이나 참모는 한 사람도 없고 정부는 무정부상태에 빠져들었다. 김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마음을 비우고 우선 한보비리부터 성역없는 수사로 가차없이 척결하겠다는 결단을 내릴 때라고 믿는다. 성직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한보사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성역없는 배후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 국가에 위기가 오고 대형 부정사건을 성역없이 척결하여 자정(自淨)능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바로 체제의 위기가 온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할 때다. 현철씨의 경우 한보의혹 관련설이 일단 공식제기된 이상 그냥 넘어가기는 어렵다. 한보관련설의 진위를 더욱 철저하게 가릴 필요가 있다. 국민회의의 한 의원은 『한보사태는 현철씨가 주동이 된 사건이며 나는 그 근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시중의 한보의혹의 핵심은 바로 이 말에 쏠려 있다. 검찰은 차제에 이같은 의혹의 규명을 국민회의와 당사자의 공방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수사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하여 밝힐 것을 촉구한다. 또한 이러한 주장에 대해 김대통령의 명확한 입장천명이 있기 전에는 국민의혹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임을 지적한다. 자식사랑하는 마음은 대통령이나 서민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정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은 부자(父子)의 관계를 넘어 국가적 위기를 몰아온 한보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대국적 차원에서 현철씨 문제에 대해 신속하고도 명확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다시 한번 김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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