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모스크바]러의원 50명 『전세방 구해주오』

  • 입력 1997년 2월 12일 20시 23분


러시아에서 뇌물거래는 일반화돼 있다. 작은 행정절차 하나 밟는데도 수고비를 집어주면 며칠 걸릴 일이 4∼5시간이면 해결된다. 이권이 걸린 사업은 더욱 심하다. 최근까지 모스크바진출 외국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권력핵심층 인사를 만나는데 최소 수십만달러의 「대면료(對面料)」가 필요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월급이 3백50만루블(약 55만원)인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측근 아나톨리 추바이스 크렘린행정실장은 최근 미화로 9만5천달러가 넘는 소득세를 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추바이스는 「월급외 소득」이 강연료 원고료 등 정당한 수입이었다고 강변했지만 러시아에서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가운데 지방에 지역구를 둔 일부 하원(국가두마)의원들의 하소연이 시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고 있다. 다소 엉뚱하지만 모스크바에 살 집을 구해달라는 것이다. 전체 하원의원 4백50명중 50명이 모스크바에서 살 집이 없어 싸구려 호텔 또는 친지집을 전전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지방출신으로 대부분 공산당 소속이다. 월 2백만루블의 세비는 의정활동에 쓰기에도 모자라는 금액. 천정부지로 치솟는 모스크바 주택임대료 사정을 감안할 때 지방출신 의원들이 전셋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다. 당 강령에서 「떡값」을 금지하고 있는데다 인기없는 공산당에 아직까지 당적을 두고 있을 정도로 「청렴」에 대한 신념이 유난히 강한 부류들이다. 3년을 모스크바에서 혼자 살아온 노보고라드지역구(모스크바 북서쪽 5백㎞)의 니콜라이 빈두코프 의원은 『몇년씩 아내 자식과 헤어진 채 초라한 호텔방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고통』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호텔 청소원의 수입이 국회의원 세비보다도 많은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그래서 이들은 얼마전 상원이 「지방출신 하원의원을 위한 공동주거지 조성에 관한 특별법」통과를 거부한데 심한 반발을 하고 있다. 깨끗한 정치 정착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보장이 필요하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상당수 시민들도 「혹시나 정치권이 깨끗해질까」하는 심정으로 이들에게 동정을 보내고 있다. <반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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