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은행장에 압력 넣었나

  • 입력 1997년 2월 4일 20시 34분


한보사건 수사는 한보로부터 거액의 대출커미션을 받은 전현직 은행장들에 대한 잇단 소환조사로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 은행장 윗선의 배후인물이 누구냐 하는, 즉 한보에 무리한 대출을 강요한 외압(外壓)의 실체를 캐는 수사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여기에는 본란이 누차 강조해 왔듯이 성역(聖域)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엄정하되 철저한 수사로 한보의혹의 진상과 뿌리를 캐낼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는 이제 전적으로 검찰에 달렸다. 그동안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 총회장에 대한 조사에서 은행장과 로비자금을 받은 정계 관계 인사들이 상당히 드러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대출커미션과 떡값 명목 등으로 돈을 받은 인사들만 적당히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가 끝난다면 사태는 수습될 수 없다. 우선 은행장들이 커미션을 받았다면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뇌물받은 인사의 처벌은 당연한 일이나 사건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다. 한보의 낮은 신용도와 자본금에도 불구하고 은행이 수조원의 천문학적 대출을 감행하게 만든 배후를 꼭 밝혀내야 한다. 은행대출액이 1백억원에 이르면 관계당국에 보고하는 것이 금융계의 상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한보에 대한 거액 대출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보에 대한 천문학적 대출이 은행장 단독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이번 수사 역시 외압의 실체에 대한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현정부의 의혹사건으로 남긴다면 정권뿐 아니라 나라의 앞날이 매우 위험해진다. 청와대의 일개 비서관을 배후인물로 지목,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가 4년여 뒤 비자금사건 수사에서 배후가 盧泰愚(노태우)전대통령으로 밝혀진 수서사건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 수서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대통령의 「성역없는 수사」 지시가 있자 비로소 검찰이 움직였다. 우리는 이 점에 특히 유의하면서 앞으로의 검찰수사를 지켜볼 것이다. 정치권과 재계 안팎에 소문은 무성하나 아직 누가 은행에 대출 압력을 넣은 배후인물인지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그가 누구든 수사와 형사처벌의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번 사건 수사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면 임기1년을 남겨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김대통령은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도 검찰이 수서사건처럼 축소 은폐수사로 끝낸다면, 그래서 수사종결 뒤에도 의혹이 계속 증폭되면 다음 정권에서 재수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국가위신의 추락은 물론 그로 인한 반작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의 명예를 위해서나, 김대통령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도 성역없는 수사야말로 검찰의 사명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