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 공신력의 위기

  • 입력 1997년 1월 27일 20시 35분


한보그룹사태로 국가의 공신력이 크게 실추(失墜)되고 있다. 한보철강의 부도를 계기로 천문학적 규모의 특혜대출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그 책임문제에 관해 강건너 불보듯하는 태도여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고 한국금융의 신용이 실추되고 있다. 나라체면과 정부공신력의 위기(危機)다. 지금 한보그룹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거액의 금융자금이 반복적으로 지원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국은 온통 외압설(外壓說)과 정경유착설(政經癒着說) 등으로 물끓듯 술렁이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부는 정치 경제적 파장에만 신경을 쓸 뿐 책임문제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러나 한보그룹에 무리한 대출이 계속되고 끝내 거액의 부도사태가 일어난 데 대해 정부는 책임이 있다. 여신관리와 은행업무의 감독을 맡은 은행감독원이나 재경원, 투자의 적정성 등을 감시해야 할 산업정책부서 등은 정부기관이다. 그 관련부처를 총괄하는 정부가 한보사태의 책임문제에 대해 말이 없다는 것은 책임회피가 아닐 수 없다. 재임중 한푼도 안받았다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체일(滯日)중 발언 역시 자신의 결백을 강조한 것으로만 들릴 뿐 이번 사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고 사태를 해결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 자신이 아무리 결백해도 밑에서 잘못이 저질러진다면 소용없는 일이며 그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일본방문을 끝내고 귀국한 김대통령은 27일 한보철강의 사업인가 대출 부도처리과정의 진상 등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보철강에 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숫자의 금융자금이 무리하게 지원되고 있는 사실을 정부가 사전에 몰랐을리 없다는데 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위험하고 무리한 특혜대출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적어도 이번사건의 궁극적인 책임이 정부의 관리능력부족에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 상식과 관행을 무시한 국내 은행들의 무리한 업무처리가 외국 금융기관 눈에 못미덥게 비쳤을 것은 당연하다. 관련 은행들이 거액의 부실채권을 안게돼 국내 은행의 해외신용추락은 불가피하다. 그에 따라 국내기업의 해외활동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실추된 국가 공신력과 한국 금융의 대외신용을 회복시킬 책임이 있다. 정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이번 사태와 관련된 모든 흑막과 의혹을 남김없이 가려 국가의 대내외 공신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