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회 동아연극상/심사평]중견작가들 활약 두드러져

입력 1997-01-21 20:14수정 2009-09-2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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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연극계의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한동안 경시되었던 스토리텔링 기능이 점차 회복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그런 추세는 1996년도 동아연극상후보로 추천된 19편의 연극공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오태석 이강백 김광림 이윤택 이만희 등 중견극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특히 이만희는 「돌아서서 떠나라」 「아름다운 거리」 등 두 편의 신작을 발표하여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했다. 희곡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된 「돌아서서 떠나라」는 극적 상황의 개연성에 다소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젊은 여의사와 중년의 깡패두목 사이의 기적적인 사랑을 통해서 이 시대가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향수를 잘 다듬어진 언어로 짜임새 있게 표현했다. 이 극이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은 정경순과 한명구의 뛰어난 역 창조에 힘입은 바 크다. 나머지 두 연기상은 유태호와 안석환에게 돌아갔다. 유태호는 화성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진실이 부재하는 현존문제를 다룬 「날 보러와요」에서 여러 혐의자들을 분명하게 차별화하면서 일인다역의 연극적 함의를 풍부하게 만들어냈고 안석환은 인간의 모성회귀를 그린 장정일의 3부작 「이 세상 끄으읕」에서 세명의 다른 인물들을 연기하면서 각각의 인물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몸짓들을 현란하게 창조해냈다. 최근 한국 연극계에서 무대미술의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지난 해에 우리는 또 하나의 유능한 신인을 발굴했다. 민언옥이다. 「옛날 옛적에 훠이 훠어이」에서 민언옥은 평면과 높이와 깊이를 극대화하고 색배합을 최소화하여 우리 민족의 원형적 심상을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단순하고 힘있게 섬겨줬다는 점을 평가받아 비록 신인이지만 무대미술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동아연극상은 이번에 대상을 내지 못했다. 연극의 예술적 수준이 전체적으로 향상됐다는 일반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단연 뛰어나 보이는 수작이 없었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결국 오랜 논의 끝에 극단 미추의 「옛날 옛적에 훠이 훠어이」와 극단 목화의 「여우와 사랑을」이 작품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옛날 옛적에 훠이 훠어이」는 「가벼움」이 지배하는 오늘의 시대에 극도로 진지한 연극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소구하는 공연미학의 개발에는 실패했지만 연극의 예술성과 사회성을 향상시키려는 극단미추의 집념이 높이 평가됐다. 「여우와 사랑을」은 연변 조선족의 눈과 체험을 통해 오늘의 한국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하면서 연극의 유희성과 연극기호의 독창성을 확장했고 이 극을 쓰고 연출한 오태석이 특유의 냉소주의를 객관화하면서 현실에 대한 관심의 깊이를 더했다는 점 등을 인정받아 작품상과 함께 연출상을 수상하게 됐다. 김 윤 철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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