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동심마저 물들어가는 「외제병」

  • 입력 1997년 1월 5일 20시 05분


▼독일 주부들은 동네 슈퍼마켓의 물건값을 일일이 비교해 보고 휴일에 이곳 저곳에 들러 가장 싼 값에 물건을 산다. 영국 사람들은 헌옷가지 하나 함부로 버리지 않는 생활습관이 몸에 밴 가운데 유행이 지난 옷도 거리낌없이 입고 다닌다. 덴마크에서는 단종된 지 15년이 넘는 폴크스바겐 1303이 거리를 누비고 캐나다에서는 이사가면서 못쓰게 된 물건을 차고앞에 내놓고 파는 「차고세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근 저축추진중앙위원회가 펴낸 「쩨쩨한 부자들」에 실린 이같은 부자나라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경제위기가 심각한데도 이미 고질적인 「한국병」이 돼버린 사치낭비풍조는 바로잡힐 기미가 없다. 한국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30대 재벌그룹들이 소비재 수입에 앞장서고 유명백화점들은 값비싼 수입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일부 부유층의 무분별한 외제선호풍조가 가세하면서 어린이들의 동심마저 「외제병」으로 멍들어 간다. ▼연말연시에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가의 스포츠용품 장난감 액세서리 등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프로농구(NBA) 유명선수의 사인볼이 53만원, 미 프로야구팀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가 10만원, 미식축구헬멧은 85만원을 호가하는데도 없어서 못판다는 얘기다. 어느새 우리 아이들이 외제 스포츠용품이나 장난감이 없으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되었는가. ▼프랑스의 정신의학자들은 분수를 모르는 과소비는 일종의 정신병적 증상이라고 분석했다. 값비싼 상품을 사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높여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현대인의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으나 지나친 과소비는 불안과 좌절 그리고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미숙과 충동성의 발로라는 것이다. 경제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허영심을 심어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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