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핀란드 헬싱키]외제보다 비싼 국산 수두룩

  • 입력 1996년 12월 27일 21시 56분


핀란드의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 가 보면 국산품 표시가 붙은 상품이 외제보다 훨씬 비싸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잘 팔린다. 지난 6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때를 같이해 도입한 「우수 국산품 표시제」가 국민들의 호응 속에 완전히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문이 있는 곳이면 핀란드 자물쇠회사 「알보이」의 제품을 볼 수 있다. 컴퓨터화된 외제 전자도어록 시스템보다 투박한 국산 기계식 자물쇠를 고집하는 모습에서 「우리집 안방의 키마저 외국에 내줄 수 없다」는 국민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외국계 유통회사도 이곳에서는 발을 붙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OECD 가입과 더불어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자성의 소리가 높지만 국산품은 여전히 외제에 맥을 못추는 실정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인데도 핀란드는 OECD 가입을 국산품 고급화와 기술 선진화의 기회로 삼았다. 외제 양주가 밀물처럼 들어오자 오히려 전통술인 「코스켄코르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삼았다.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내놓을 만한 산업이 없었던 핀란드는 디자인 산업에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결과 섬유직물의 마리멩코, 유리의 이탈라, 도기제품의 아라비아, 주방용품의 하크만 등을 세계적 수준의 국민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다. 올해 우리나라가 핀란드에 수출한 액수는 1억달러. 반면 수입은 무려 5억달러로 무역역조 규모가 5배나 되는데도 개방화 물결에 편승해 사치용 여우털 밍크털 수입은 줄지 않고 있다. 동물보호단체의 활동으로 모피는 구미 선진국은 물론 주요 생산지인 핀란드에서마저 천대받는 산업이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는 수입관세는 물론 특소세까지 낮춰주면서 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 인삼이 등장하고 김치보다 「기무치」가 더 빠른 속도로 알려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것 지키기 운동」 또는 「선진국처럼 검소하기 운동」이라도 펼쳐야 하지 않을까. 김 주 남 (헬싱키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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