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의회, 구청 왜 이러나

  • 입력 1996년 12월 24일 20시 36분


민선 자치시대라고 해서 서울시의 각 구청이 시 전체 행정의 종합성과 일관성을 해치는 독단으로 치달아서는 안된다. 자치구로서의 입장과 여건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울시의 올바른 행정지시를 거부하거나 시정(市政)지침을 외면한다면 시민을 위한 시정은 기대할 수 없다. 서울시의회의 역할과 기능 또한 시민의 편익과 삶의 질을 높여간다는 차원에서 바르게 행사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서울시의회가 총 9조3천억원 규모의 내년도 서울시 예산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의 요구로 5백억원을 특정지역 민원사업에 우선 배정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예산편성과 집행은 우선순위를 가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도 서울시 의회가 이를 무시하고 특정사업을 위한 예산을 새로 편성하거나 증액했다면 예산심의 및 의결권의 남용이다. 더욱이 창동차량기지 및 도봉면허시험장 복합개발사업의 경우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는데도 지역민원사업이라는 이유로 연구용역비 2억원을 억지 계상한 것은 이만저만한 횡포가 아니다. 시의회 운영비를 작년보다 무려 55.7%나 증액한 것 역시 긴축예산 편성이라는 당초 취지에 어긋난다. 이에 대한 시의회의 납득할만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서울시의 방만한 예산운용이 시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시의회의 예산심의마저 다음 선거를 의식한 득표전략에 이끌린다면 예산의 합리적인 편성과 집행 등 알뜰한 서울시 살림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무산되고 만다. 연말 분위기를 틈탄 각 구청의 송년 행사도 민망하기 짝이 없다. 趙淳(조순)서울시장이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 간담회 등 불필요한 행사를 적극 자제해 주도록 거듭 요청했음에도 일선 구청에서는 갖가지 명목의 음악회 간담회 취미레크리에이션 종합발표회 각종 동아리축제 등 선심성 행사를 앞다투어 열고 있다. 이들 행사에는 구청장들이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예년보다 더욱 썰렁해진 연말이다. 고아원 양로원 등 외롭고 불우한 이웃을 찾는 온정의 발길도 보기 힘들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수천만원씩을 들여 유명가수와 무용단까지 초청해 그럴듯한 굿판과 노래잔치를 벌여야 하는가. 관변단체와의 간담회도 그렇지만 동장부부간담회 세차(洗車)협회간담회 알뜰장종사자간담회 등 별 희한한 명목의 간담회는 또 무엇인가. 자치구의 자체 재원으로는 각 구청의 재정을 충당할 수 없어 막대한 교부금과 보조금을 받고 있는 처지에 이같은 선심성행사를 위한 예산낭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럴 돈이 있으면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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