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37)

  • 입력 1996년 12월 8일 19시 56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11〉 박지영이 덧붙였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시험기간이라 학생들하고 강의실에서 마주칠 일은 없잖아요. 강선생, 강의실에서 학생들 얼굴 쳐다보기 힘들었을 텐데…』 『왜요?』 『왜라니? 강선생도 참. 그런 소문 듣고 학생들이 강선생을 이상하게 쳐다볼 거 아녜요. 그런 속에서 어떻게 강의를 해요』 『선생에게도 사생활이 있다는 게 뭐가 이상하겠어요?』 『사생활이 좀 문제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죠』 그 말을 불쑥 던진 뒤 박지영과 나는 다음 순간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박지영 자신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녀는 줄곧 「내 편」의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 견해는 투서를 보낸 사람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속마음을 내보인 것이 무안해서 입을 다문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이 보편적인 것임을 이해했다. 내가 입을 다문 것은 미안해 할 필요없다는 뜻이었다. 교수회의는 며칠 후에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연말 기분 덕분인지 성토를 짧게 끝내고 나서 회식 분위기로 이어졌다는 박지영의 보고였다. 물론 그 정도로 쉽게 마무리될 일은 아니었다. 내 자리로 오기로 한 교수 내정자가 누구라는 것이 내 귀에도 들려올 만큼 이미 공공연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설령 어찌어찌하여 단순한 「음해를 위한 익명 투서사건」으로 정리가 되어 내 자리가 지켜진다 해도 「사생활이 문란한 교수」라는 꼬리표는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그것은 연구실로 불쑥불쑥 걸려오는 익명의 전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거기 강진희교수 방인가요?』 『그런데요』 『나는 학부형되는 사람이오』 그렇게 시작해서 따끔한 훈계를 한 다음 더 이상 자식을 맡길 수 없으니 알아서 나가달라고 말하는 축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흥분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욕을 해대는 오십대쯤된 여자도 있었다. 「교내에서 당신의 방만한 행동을 여러번 목격한 바 있는 같은 학교 교수」라고만 신분을 밝힌 사람이 나에게 「교수의 명예를 더럽히는 한 마리의 미꾸라지이자 윤리사회의 독버섯」이라는 칭호를 내리기도 했다. 변론의 기회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성인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그래도 되는 거요? 어디 할 말 있으면 한번 해봐요』 하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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