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日 「원폭돔」과 전쟁범죄

  • 입력 1996년 12월 7일 20시 11분


1945년 8월 6일 새벽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세계 역사를 일순간에 바꿔버렸다. 그리고 반세기가 넘게 흐른 지금 폐허 속에서 용케 버텼던 산업장려관 건물(원폭돔)은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등록이 결정되던 지난6일 아침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히로시마 시민들은 원폭돔 앞에 모여들었다. 「참혹한 아픔을 후대에 전해 핵의 무서움을 일깨우자」. 시민들은 원폭사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돔의 잔해위에 물을 뿌렸다. 사람들은 국제적인 「세계평화 상징물」로 격상돼 몹시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총리도 『전쟁 관련물은 문화유산이 될 수 없다지만 이미 등록된 예(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며 좋아했다. 그의 말속에는 등록에 반대해온 미국의 태도를 겨냥하는 가시도 돋쳐 있었다. 미국은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에 불참했으며 중국은 태도를 유보했다. 일본은 이들 나라가 사실상 등록을 「묵인」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의 일부 인사들은 며칠전 미국이 옛 일본군전범들에 대해 내린 입국금지조치도 거론했다. 유산등록이 거의 확실해지자 미국이 선제용 「견제구」를 던진 게 아니냐며 비아냥댔다. 이들은 이제 과거 침략전쟁의 역사를 「원폭돔」으로 덮기 위해 몹시 분주해질 판이다. 우익성향 정치인이나 단체뿐만이 아니다.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유명 방송캐스터 출신까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며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원폭돔」처럼 형해화(形骸化)된 역사로는 진실로 히로시마 시민의 아픔을 달래거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주변국 국민은 원폭돔이 점점 무서워지는 게 아닐까. 윤 상 삼<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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