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서울시 버스안내방송 녹음 도맡은 강성은씨

  • 입력 1996년 11월 29일 21시 02분


「朴賢眞기자」 『여기는 이대입구 다음은 신촌입니다』 서울시내버스 8천여대중 안내방송시설이 갖춰진 6천2백대의 안내를 도맡고 있는 강성은씨(25). 이 안내방송들은 지난 94년부터 강씨가 혼자 녹음한 것. 어느 버스를 타든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삐삐녹음, 지하철 안내방송과 함께 서울시민에겐 가장 친숙한 「얼굴없는 목소리」다. 93년 서울산업대 방송반 시절 우연찮게 버스안내방송 전문회사인 미리아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졸업 후 아예 그곳에 취업하면서 본업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이 『대학 졸업하구 고작 버스안내양 하느냐』고 놀리고 자신도 그렇게 여겨 오래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마음을 바꿨다. 94년 디지털방식이 도입되어 안내방송이 운전자의 조작없이도 자동으로 나오면서 모든 녹음을 그가 맡았다. 첫 녹음상태를 확인하려 버스를 타고 다니다 할머니 한분이 『버스 좋아졌다』면서 내렸을 때 느낀 왠지 모를 뿌듯함이 그를 붙들어 맸다. 안내방송을 하지 않는다고 승객들이 항의할 때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얼마전 있었던 버스업주들의 횡령사건은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몇개월 단위로 버스노선이 변경되는데 그때는 녹음신청이 한꺼번에 몰려 며칠밤을 새워야 해요. 노선변경이 시민이 아닌 사주의 욕심과 공무원의 비리 탓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분해요』 노선 변경때마다 녹음내용을 조금씩 바꾸는 게 평상시 일이다. 보수공사로 노선이 끊겨 바뀌고 구청에서 민원이 들어와서 바뀌고 지하철 개통되면 바뀌고. 덕분에 일이 계속 있어 좋지만 그 사건이후 가끔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단다. 목소리 때문에 회사로 찾아오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단다. 덕분에 3년차 연봉이 1천5백만원이 채 안되지만 자부심은 크다. 그녀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휴먼다큐멘터리 해설자. 그러나 아무 곳도 그녀를 불러주지는 않는다. 대신 생각한 것이 버스안내방송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 『안내방송이 딱딱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은 정류장을 소개하는 중간중간에 사람들의 사는 얘기를 담아볼까 생각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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