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김순권 경북大 석좌교수

  • 입력 1996년 11월 22일 20시 20분


「權基太기자」 「아프리카 식량안보를 위해 희생한 삶」. 경북대 김순권석좌교수(51)를 그린 아프리카 한 농과대학생의 초상화에 새겨진 글귀다. 지난 19일 서울에서 김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창립됐다. 그는 이미 나이지리아 오바산조 전대통령 등 전세계 명망가들로부터 네차례나 노벨상후보로 추천됐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자랑스런 칭호가 있다. 나이지리아 에리파 마을에서 받은 명예추장 칭호 「마이에군」이다. 「가난한 이를 배불리 먹인 자」라는 뜻. 김교수가 옥수수 다수확 품종을 개발, 이를 아프리카 전역에 보급해 아프리카인들을 기아에서 구한 업적을 기린 것이다. 김교수가 옥수수박사의 길로 들어선 때는 지난 70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옥수수 육종을 전공하면서부터다. 이듬해 하와이대에 가 계속 이 분야에 몰두, 3년만에 석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왔다. 이후 5년동안에 농업진흥청에서 수확량을 2배이상 늘리는 다수확품종 3종류 개발에 성공하는 개가를 올렸다. 울산농고를 다니며 우장춘박사와 같은 육종학자가 돼 굶주림을 해결해야겠다고 한 결심이 첫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 성공에 고무되어 79년 나이지리아 이바단에 있는 국제열대농업연구소에 자원,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러나 난제도 숱했다. 『악마의 풀이라 불리는 스트라이거가 최대의 골칫거리더군요. 옥수수밭을 폐허로 만드는 기생잡초였습니다. 방제하려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뽑아 없애려면 더욱 번성하는 지긋지긋한 풀이었지요』 그러나 1주일에 수백㎞씩 옥수수밭을 찾아다니는 연구 끝에 스트라이거 저항성 옥수수 50여종을 새로 만들어냈다. 서구학자들이 1백년 연구 끝에 포기한터라 모두들 기적이라 불렀다. 아프리카 각국들이 다투어 옥수수 재배에 나서면서 수확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식량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해말 17년만에 귀국한 그는 이번 위원회 발족에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농사꾼 같이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연구준비를 서두르는 그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을 위한 「슈퍼 옥수수」 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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