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21)

  • 입력 1996년 11월 22일 18시 44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28〉 바바리코트 속에서 팔을 빼내며 내가 묻는다. 『전화 왔었다고? 누군데?』 『모르겠어. 내가 받으니까 그냥 끊어버리더라』 애리라는 걸 알고 끊어버렸다면 현석이겠군. 내 생각을 다 안다는 듯이 애리가 한마디 덧붙인다. 『이선생님이겠지?』 『글쎄…』 『그럼 또 다른 남자야?』 『그럴지도 모르지. 말했잖아, 애인이 많다고』 『언니 진짜 한심하다』 『그래 맞아. 난 애인이 많아서 너무 한심해』 『그게 아냐』 애리의 눈가가 꼿꼿해진다. 『꼭 그래야 해? 그렇게 자유분방한 체 해서 어쩌겠다는 거야? 이선생님하고 결혼하면 될걸, 아무것도 저지르지 못하는 겁쟁이면서…. 그러다가 이선생님이 떠나면 언니는 분명 그럴 거야. 그래, 어차피 예정됐던 일이야, 사랑 따위가 뭐 있겠어. 차라리 잘 됐지 뭐. 이런 때를 대비해서 애인을 저축해뒀으니 역시 난 치밀해』 애리는 지난번 현석이 떠난 다음 내가 마음속으로 품었던 생각을 그대로 집어내고 있다. 하지만 깜찍한 동생이라고 감탄만 하기에는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애리에 의해 내 허위가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다. 나는 오해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몇 번의 삼각관계만 해도 그렇다. 나는 종태와 그의 아내, 신차장과 윤선 사이에 있었는가 하면 애리와 현석의 사이에도 끼어들었다. 그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이란, 어릴 적 정혼했던 두 남녀가 소식이 끊긴 채 둘 다 동경으로 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여자가 자살을 하려고 하는 순간 마침 지나가던 남자에게 구조를 받는데 그 남자가 바로 그녀의 약혼자였다는 식의 신소설에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매력적인 여자라서 남자들을 끌어당겼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나 자신은 나를 오해하지 않는다. 내가 애인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것을 충당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유능한 카운슬러와 점쟁이가 그렇듯이 올바른 충고를 해주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제공한다. 충고란 동의일 때만 현명한 거니까. 그러면 그들은 내가 자기들 마음을 잘 알 만큼 현명하거나, 아니면 운명적으로 마음이 잘 통하는 거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글 :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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