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종편견 뒤엎은 흑인의 父情 「타임 투 킬」

  • 입력 1996년 10월 30일 20시 42분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범인 또는 악당은 대개 흑인이었다. 교양있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선량한 시민」 백인은 술 마약에 찌들고 말투도 거친 「못된 흑인」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식으로 묘사돼 왔다. 2일 개봉되는 영화 「타임 투 킬」(조엘 슈마허 감독)은 이같은 흑백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뒤엎고 내용을 전개시켜 미국 상영 당시 논란을 불러 일으킨 화제작이다.> 영화를 꾸미는 사건의 골격은 두가지. 백인 불량배 2명이 한적한 오솔길에서 아홉살짜리 흑인소녀를 잔혹하게 성폭행한다. 복수심을 품은 소녀의 부친 칼리(사무엘 잭슨)는 법정 입구에서 자동소총으로 범인들을 살해한뒤 젊은 백인 변호사 제이크(매튜 매커너히)에게 변론을 요청한다. 재판을 받는 살인범은 물론 흑인 칼리. 그러나 양쪽의 범행을 두루 지켜본 관객들은 죄질면에서 피살된 백인청년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믿게 된다. 작은 도시에서 열린 흑인노동자에 대한 재판은 뿌리깊은 인종갈등 문제와 맞물려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핫이슈로 떠오른다. 영화 분위기가 무거워질 즈음 상큼한 이미지의 산드라 블록이 제이크를 돕는 여대생 엘렌으로 등장해 변수 역할을 떠맡는다. 「타임 투 킬」은 지난 7월말 미국 개봉 직후 올 여름 최대의 히트작인 「인디펜던스 데이」를 누르고 4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극장앞에 줄지어 선 흑인 관객들은 모처럼 접하는 자신들의 「승리담」에 열광했다는 후문이다. 『처참하게 찢겨나간 그 여자아이가 만약 백인이었다면…』 검찰의 치밀한 공작에 밀려 고전을 거듭하던 제이크가 최후변론을 통해 백인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은 인종편견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사무엘 잭슨, 우피 골드버그(에디), 윌 스미스(인디펜던스 데이), 웨슬리 스나입스(더 팬) 등 흑인배우 약진 현상을 소개하면서 가장 큰 요인으로 흑인 관객수가 늘어난 점을 꼽았다. 작년의 경우 여름시즌 대작 영화 38편중 흑인이 주연을 맡은 작품은 24%인 9편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그 비율이 45%로 높아졌다는 것.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타임 투 킬」의 배역 설정이 종전보다 참신해진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본질의 변화로 보기는 곤란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의감에 불타는 변호사 제이크라는 인물은 흑인 못지않게 중산층 백인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기능도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타임 투 킬」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관객 반응과 흥행 스코어를 염두에 둔 할리우드 제작방식의 치밀함과 상업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있다. <朴 元 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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