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US오픈’ 초대 챔피언 프로골퍼 이승민의 어머니 박지애 씨
아들, 장애 가진 선수들 출전한 美골프협회 주최 대회서 우승
네 살 때 자폐성 발달장애 진단
“아직 어려서 그래” 부정했지만… ‘장애 아들 둔 엄마’ 인정하며 동행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요?”
1일 경기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 중이던 이승민(25·하나금융그룹)을 알아본 한 시민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이승민이 연신 “저요?” 하며 당황하자 함께 있던 어머니 박지애 씨(56)가 “(이)승민이가 유명해져서 그래. 엄마 볼 때처럼 웃고 있으면 돼”라고 말했다.
이승민은 지난달 20일 막을 내린 미국골프협회(USGA) 주최 ‘US 어댑티브 오픈’에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 대회는 지체, 시각, 발달 등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8개 부문에 각각 출전해 장애 정도에 따라 전체 길이가 다른 코스에서 순위를 가리는 대회였다. 이후 사람들이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올 때마다 박 씨는 가슴이 찡하다.
이제 이승민은 장애 극복의 대명사가 됐지만 박 씨조차 아들이 여섯 살 때까지는 장애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이승민이 두 살이던 1999년 주치의가 “승민이는 남들과 좀 다르다”고 했을 때도, 네 살이던 2001년 자폐성 발달장애를 진단받은 뒤에도 박 씨는 ‘아직 어려서 그래’라고 되뇌었다.
이승민이 남과 다른 행동을 할 때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이승민은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 받으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가지고 노는 대신에 수십 대씩 일렬로 줄을 세웠고, 식탁 위에 놓인 접시를 하루 종일 한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다. 아들이 이런 행동을 반복할 때면 나이가 들면서 나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그런 박 씨의 마음을 바꿔놓은 건 의사의 한마디였다. 이 의사는 “부모가 자식의 장애를 외면하면 창피함을 숨길 순 있어도 아이는 지옥 같은 삶을 살 것”이라며 “아이가 행복하려면 부모부터 자식의 장애를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씨가 자신을 ‘장애 아들을 둔 엄마’로 인정한 건 그때부터였다.
이승민이 중학교 1학년이던 2010년 골프를 시작하면서 박 씨는 그림자처럼 아들 곁을 따라다녔다. 이승민이 그린 위에 올라간 자신의 공만 바라보며 직진하다가 상대 선수의 공이 굴러갈 라인을 밟고 지나갈 때면 박 씨는 입버릇처럼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다. 죄송하다”고 설명해야 했다.
어머니 박 씨는 13년간 아들을 위해 고개를 숙였고, 덕분에 이승민은 세상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고교 2학년이던 2014년 세미프로 자격증을 딴 이승민은 2017년 발달장애 선수로는 국내 최초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정회원 자격을 얻었다.
아들이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도록 박 씨는 2년 전부터 캐디 윤슬기 씨(42)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윤 씨는 매일 11시간씩 빠짐없이 반복 훈련을 지시했다. 팔 힘만으로 위에서 아래로 도끼 내려찍듯 하던 스윙을 좌우 방향으로 바꿔주기 위해서였다. 훈련이 버거워 연습장을 뛰쳐나갈 때마다 이승민이 안겨 울 곳은 박 씨의 품뿐이었다.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로스쿨, 로펌 동기인 최수연이 일상생활 중 겪는 어려움을 도와주자 그를 ‘봄날의 햇살’이라고 불렀다. 이승민은 어머니를 ‘나의 상냥한 수호천사’라고 부른다. 박 씨는 “그저 승민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승민이가 조금 늦되더라도 자신의 목표를 하나씩 이뤄 가는 걸 곁에서 하나하나 지켜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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