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37세 휠체어농구 대표팀에 ‘20세 끓는 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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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년 만에 태극마크 윤석훈

휠체어 농구 대표 윤석훈이 18일 경기 고양시 홀트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 공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고양=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휠체어 농구 대표 윤석훈이 18일 경기 고양시 홀트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 공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고양=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국 휠체어 농구는 노쇠화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대표 선수 12명은 평균 37.1세로 이 대회 본선 진출 14개국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다. 윤석훈(20·코웨이·센터)의 등장에 휠체어 농구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윤석훈은 데뷔 무대였던 지난해 휠체어 농구 리그에서 12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3.6득점, 3.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서울시청의 15전 전승 우승을 도왔다. 최영규 한국휠체어농구연맹 기획운영팀장은 “데뷔 시즌에 이 정도 실력을 낸 윤석훈은 성장 가능성이 큰 선수”라고 말했다. 우승 팀에서 공헌도 7위를 기록한 윤석훈은 다음 달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이틀 앞둔 18일 고양시장컵 대회가 열리고 있던 경기 고양시 홀트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 만난 윤석훈은 “경기를 뛰면서 ‘오늘은 잘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들이 칭찬을 해주셔서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더 잘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더욱 힘을 내 뛰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해 “사실은 사고 전만 해도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패트릭 앤더슨(43·캐나다)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면서 “처음 다리를 잘랐을 때 ‘나는 너 같은 모습으로는 못 산다’고 말하던 친구도 ‘이제 너는 꿈이 있으니 부럽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앤더슨은 휠체어 농구의 마이클 조던으로 통하는 선수로 캐나다에 2000, 2004, 2012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군 입대 후 부사관이 되겠다고 생각하던 윤석훈은 2020년 9월 오토바이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운전 미숙으로 넘어진 게 화근이었다. 윤석훈은 “꼬박 2주를 울기만 했다. ‘이제 뭐 먹고살지?’라는 혼잣말만 계속 했다”고 회상했다.

그대로 주저앉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였다. 윤석훈은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사실 퇴원한 바로 다음 날에도 놀러 나갔다”라며 웃은 뒤 “병원에 있던 두 달 동안 체중이 20kg 정도 늘었다. ‘살부터 빼자’는 생각으로 서울시장애인체육회를 찾았다. 원래 역도를 할 생각이었는데 휠체어 농구를 추천받아 서울시청에 입단했다”고 했다.

본인도 몰랐지만 윤석훈은 한국 휠체어 농구가 기다려온 바로 그 선수였다. 키(182cm)도 크지만 양팔 길이가 195cm로 길어 높이에서 외국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휠체어 농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유럽 세미프로 리그에 진출했던 ‘국보급 센터’ 김동현(34·제주삼다수)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윤석훈은 “장애인으로서 운동에 용기를 내기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일단 부딪쳐 보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참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며 장애인들에게 운동을 권했다.

고양=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한국 휠체어 농구#노쇠화#윤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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