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 갈림길에서 마주한 ‘정운찬·이대호’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3월 27일 05시 30분


정운찬 KBO 총재(왼쪽)-롯데 이대호. 스포츠동아DB
정운찬 KBO 총재(왼쪽)-롯데 이대호. 스포츠동아DB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2001년 설립됐다. 그러나 그 뿌리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고(故) 최동원은 ‘선수회’를 설립했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선수연금, 에이전트 제도 등 혁신적인 제도 도입을 요청했다. 구단들은 강경했다. 선수회에 가입한 선수와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만약 선수회 가입으로 방출된 선수와 계약하는 팀과의 경기도 거부하기로 했다. 결국 선수들은 백기 투항했다.

최동원은 선수회 설립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분신과도 같았던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그러나 그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KBO는 선수연금 제도를 도입했고 처우개선에 공을 들였다.

2001년 선수협회는 큰 어려움 속에서 탄생했다. 송진우 현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는 강제 은퇴도 감수하며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곧 철회됐지만 실제 방출되기도 했다.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선수들은 대부분 트레이드됐다.

이들의 헌신 속에 프로야구 선수는 더 존중받는 직업이 됐고, 선수협회는 한국야구와 KBO리그의 양적, 질적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종종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무게 중심이 리그와 팬이 아닌 선수들만의 입장으로 기우는 순간 팬들은 선수협회를 외면했다.

KBO리그는 현재 큰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자생력을 갖춘 스포츠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 정점을 지나 추락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기도 하다.

KBO 정운찬 총재는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메이저리그를 모델로 리그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성공의 첫 번째 조건은 리그 흥행이며, 이를 위해서는 팀 전력 평준화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팀이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리그가 되기 위해서는 프리에이전트(FA)제도의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정운찬 총재의 협상 파트너는 제10대 선수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다.

매우 어려운 거래가 KBO 총재와 선수협회 회장을 기다리고 있다. 선수들의 리더가 자신을 선출한 선수들만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마주 앉을 테이블은 깨질 수 있다. 선수협회 회장에게 협상보다 더 어려운 것은 선수들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이대호 회장의 선배들은 앞에서는 구단의 강제은퇴 겁박과 싸웠고 뒤에서는 두려움에 떠는 동료들을 설득했다. 인생을 건 싸움이었다. 이제 그 헌신의 바통은 ‘대한민국 4번타자’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가진 슈퍼스타의 손에 쥐어졌다.

#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스트라이크존을 77개의 공으로 나눠 공략했다. 그중 자신이 4할 이상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코스의 공3.5개를 ‘해피 존’이라고 이름 지었다. 타자는 놓쳐서는 안 되는 반대로 투수는 절대로 피해야 할 해피 존은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의 철학이 요약된 곳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