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남벽 새 루트 개척이 꿈이었는데…”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0월 15일 05시 45분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이여.” 네팔 히말라야 등반 중 사고로 사망한 원정대의 마지막 모습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임일진 감독, 김창호 대장, 이재훈 대원, 유영직 대원(왼쪽부터). 사진출처|카트만두포스트 캡처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이여.” 네팔 히말라야 등반 중 사고로 사망한 원정대의 마지막 모습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임일진 감독, 김창호 대장, 이재훈 대원, 유영직 대원(왼쪽부터). 사진출처|카트만두포스트 캡처
■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9명 추락사…세계적인 등반가 김창호 대장, 산에 잠들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
7년 10개월 6일 걸려…세계 최단기록
작년 네팔 최고봉 힘중 등반 황금피켈상
다람수라·팝수라 신루트 개척하기도


“히말라야가 녹아 없어질 때까지 그의 이름은 기억될 겁니다.”

인터넷 세상이 온통 검은 애도의 물결로 굽이쳤다. 네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을 등반하던 중 김창호(49) 대장을 포함한 산악 원정대 5명이 12일(현지시간)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김 대장이 이끌던 총 9명의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는 이날 베이스캠프에 머물다 강풍에 휩쓸려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해 사고를 당했다. 한국인 5명은 김창호 대장과 유영직(51·장비담당), 이재훈(24·식량 및 의료담당), 임일진(49·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그리고 원정대를 격려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한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였다. 네팔인 가이드 4명도 함께 변을 당했다.

14일 외교부는 대형 헬리콥터와 전문 수습팀이 사고지역에 도착해 시신수습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김창호 대장은 그저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정도로 소개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등반업적은 두 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무산소등정과 등로주의이다. 그는 “내가 가진 힘만으로 산에 오르고 싶다”라고 외칠 수 있는 세계를 통틀어 몇 안 되는 등반가 중 한 명이었다.

김창호 대장은 경북 예천 출신이다. 영주중앙고등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과를 나왔다. 서울시립대 산악부에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히말라야 첫 등반은 1993년 그레이트 트랑고타워(6284m)로 기록돼 있다.


‘김창호’라는 이름은 세계 산악계에서 ‘무산소 등정’과 치환됐다.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이상 14좌를 무산소로 오른 사람이다. 7년 10개월 6일이 걸렸고, 이는 아직까지 세계 최단기록이다. 무산소 등정은 8400m 이상의 고산을 외부 산소공급없이 오르는 등반이다. 8000m에서의 산소량은 평지의 3분의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대장은 마칼루(8463m), 로체(8516m) 등 악마의 얼굴을 가진 험봉들을 산소통 없이 오롯이 두 폐의 힘만으로 올랐다.

지난해에는 네팔의 미등정봉 중 가장 높은 힘중을 세계 최초로 등반해 황금피켈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클라이밍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권위있는 상이다. 김창호 대장은 시상식에서 “산에 가지 않는 산악인은 의미가 없다”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과연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무산소 등정의 도전을 이룬 김 대장은 ‘등정’보다는 등반의 과정을 중시하는 ‘등로’로 방향키를 돌렸다. 남이 간 길을 되밟아 올라 정상에 오르는 대신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2017 코리안웨이 인도원정대’가 대표적이다. 이 원정대는 인도 히말라야 다람수라(6446m)와 팝수라(6451m)의 신규 루트를 뚫는 데 성공했다. 변을 당한 이번 등반은 네팔 구르자히말의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이 목표였다.

김창호 대장은 평소 “산 정상에 올랐다고 성공한 것이 아니다. 집까지 돌아와야 비로소 성공한 등반이라 할 수 있다”며 ‘집에서 집으로’를 모토로 삼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수많은 등반을 통해 성공을 거뒀고, 이제 히말라야 계곡의 눈 속에 묻혔다.

그는 진정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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