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화제]지프라인이 된 스키점프대… 명물로 키운 ‘캘거리의 상상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2018 평창, 밴쿠버-캘거리서 배워라… 올림픽 이후 시설 활용도

캐나다는 자타가 인정하는 겨울 스포츠 강국이지만 스키점프 인구는 100명 안팎밖에 되지 않는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 시설을 운영하는 윈스포트는 스키점프대에 지프라인(밧줄을 연결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체험 시설)을 설치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냈다. 이 지프라인을 타면 캘거리 시내 전경을 바라보며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윈스포트 제공
캐나다는 자타가 인정하는 겨울 스포츠 강국이지만 스키점프 인구는 100명 안팎밖에 되지 않는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 시설을 운영하는 윈스포트는 스키점프대에 지프라인(밧줄을 연결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체험 시설)을 설치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냈다. 이 지프라인을 타면 캘거리 시내 전경을 바라보며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윈스포트 제공
한 화장실 안에 두 개의 변기가 나란히 배치된 사진으로 화제가 됐던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을 기억하는가. 러시아는 이 대회에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많은 510억 달러(약 58조5990억 원)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어설픈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미디어 숙소에 어떤 날은 찬물만 나왔고, 다음 날엔 뜨거운 물만 나왔다. 화장실에 갇혀 있다가 아예 문을 부수고 나온 선수도 있었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여름올림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회 전날까지도 각 경기장엔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 명이 자는 방에 더블침대를 놓는 바람에 올림픽 기간 내내 2명이 한 침대를 써야 하는 일도 있었다. 불안한 치안 탓에 거리를 다닐 때는 항상 조심해야 했다.

2018년 2월 열리는 대한민국 평창 겨울올림픽은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현재까진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우선 국민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다. 지난해 말 국정 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이 평창 올림픽을 통해 개인적인 이권을 취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더욱 외면받고 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은 향후 노력에 따라 훌륭한 올림픽 유산(Legacy)으로 남을 수 있는 대회다. 1988년 열린 서울 올림픽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면 평창 올림픽은 한국이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선진 사례를 참고해 평창 올림픽의 미래를 살펴봤다.

시설만큼은 완벽

“빙질이 좋아 긴장을 풀고 스케이팅을 할 수 있었다.” 올해 2월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강릉 오벌)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세계적인 빙속 스타 스벤 크라머르(네덜란드)가 한 말이다. 최근 두 대회 연속 여자 500m를 제패한 ‘빙속 여제’ 이상화도 “한국 선수들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져 좋은 기록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치러진 이 대회는 선수 및 관계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12개의 평창 올림픽 경기장은 2016년 말부터 올해 4월까지 26개의 테스트 이벤트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보완해야 할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경기장 시설과 운영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올림픽을 7개월여 앞둔 현재 12개의 경기장은 모두 최종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선수촌과 미디어촌, 국제방송센터(IBC), 올림픽 개·폐회식장 등도 연내에 준공된다. 이렇게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올림픽은 찾기 힘들다. 빙상 경기가 열리는 강릉 코스털 클러스터와 설상 경기장인 평창 마운틴 클러스터가 인접해 있어 역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콤팩트한 구성을 이뤘다는 평가도 받는다.

수도권과 강원도를 연결하는 다양한 교통 시설은 또 하나의 유산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서울과 강릉을 1시간 10분에 연결하는 고속철도(KTX)는 올해 말 운행을 시작한다. 제2영동고속도로는 지난해 말 개통됐고 서울∼양양고속도로도 최근 완전 개통됐다. 평창 올림픽 관련 예산은 모두 13조7000억 원으로 추산되지만 이 중 11조 원이 사회간접자본(SOC) 비용이다.

진정한 겨울종목 강국으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이 열렸던 리치먼드 오벌은 빙상은 물론이고 배구, 육상, 골프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주민 체육시설로 바뀌었다(위쪽 사진). 1988년 캘거리 올림픽이 열렸던 스키장은 여름에는 산악자전거의 명소로 변신한다. 리치먼드시·윈스포트 제공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이 열렸던 리치먼드 오벌은 빙상은 물론이고 배구, 육상, 골프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주민 체육시설로 바뀌었다(위쪽 사진). 1988년 캘거리 올림픽이 열렸던 스키장은 여름에는 산악자전거의 명소로 변신한다. 리치먼드시·윈스포트 제공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올림픽 중 하나로 꼽힌다. 무엇보다 캐나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계기가 됐다. 존 펄롱 밴쿠버 올림픽조직위원장(현 메이저리그 사커 밴쿠버 화이트캡스 구단주)은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전에서 시드니 크로스비의 결승골이 터졌을 때 온 나라가 캐나다 깃발로 물들었다. 역대 겨울올림픽 최다인 14개의 금메달을 따면서 캐나다 국민의 자긍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전통적인 겨울 종목 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캐나다 캘거리는 1988년 겨울올림픽을 개최했는데 당시 캐나다는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다. 은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로 종합 순위 13위에 그쳤다.

하지만 당시 캘거리에 건설했던 올림픽 시설들은 고스란히 남았다. 캘거리는 올림픽 이후 200여 회의 국내·국제대회를 개최했다. 훌륭한 시설을 갖춘 덕분에 좋은 선수들이 생겼고 겨울 스포츠의 인기도 점점 높아져 갔다. 밴쿠버 올림픽의 결실은 캘거리 올림픽이 남긴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창이 올림픽 유치에 뛰어든 후 한국 겨울 스포츠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까지 한국의 겨울올림픽 메달은 거의 대부분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하지만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피겨스케이팅(김연아)과 스피드스케이팅(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으로 외연이 넓어졌다.

평창에서는 그동안 우리와는 전혀 인연이 없어 보였던 스키 종목과 썰매 종목에서의 메달이 기대된다.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지난 시즌 월드컵에서 세계 랭킹 2위에 올랐다. 스노보드의 이상호, 모굴 스키의 최재우, 크로스컨트리의 마그너스 김 등도 메달권에 근접한 선수들이다.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남자 아이스하키는 사상 첫 월드챔피언십(톱 디비전·1부 리그) 진출의 기적을 일궜고, 여자 아이스하키 역시 평창 올림픽에서 선보인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시설들을 잘 유지·관리하고 선수 육성에도 힘을 기울인다면 한국은 진정한 겨울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필요한 건 창의력과 상상력

현재 평창 올림픽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시설물의 사후 처리다. 12개의 경기장 가운데 2곳(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정선 알파인 센터)은 아직까지 관리 및 운영 주체를 정하지 못했다. 특히 1264억 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당초 대회 후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최순실 파문’ 속에 다시 존치가 결정되면서 애물단지로 남을 공산이 크다.

올림픽 이후에도 시설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와 캘거리의 경험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밴쿠버 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렸던 밴쿠버 인근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은 요즘 지역 주민들의 ‘스포츠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올림픽 시작 전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장이 깔려 있던 자리는 3개의 아이스링크와 100m, 60m 육상 트랙, 각종 실내스포츠를 할 수 있는 코트에 암벽등판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트랙 위 천장에는 그물이 설치돼 골프나 야구 타격 훈련까지 가능하다. 기자가 찾았던 지난달 한쪽에선 학생들이 방과 후 체육활동을 하고 그 옆에서는 캐나다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테드 다운센드 리치먼드시 홍보·마케팅 디렉터는 “경기장을 지을 때부터 올림픽보다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걸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밴쿠버 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린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내 선더버드 스포츠 아레나나 컬링경기장이었던 힐크레스트센터 역시 지금은 지역 주민을 위한 레저 체육시설로 쓰이고 있다.

인구와 환경이 다른 캐나다의 성공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상력은 배워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캘거리 스포츠파크 내에 위치한 스키점프대와 슬라이딩센터다. 스키점프대는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캘거리 스포츠 파크를 운영하는 윈스포트는 스키점프대에 지프라인(Zipline·밧줄을 연결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체험 시설)을 설치해 수익을 내고 있다. 스키장 시설은 여름에는 산악자전거의 명소로 변신한다.

평창은 평창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면 된다. 다행스럽게도 2022년 겨울올림픽은 인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다. 평창의 올림픽 시설들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비하는 외국 팀들에 좋은 훈련장이 될 수 있다. 이브 아믈랭 캘거리 올림픽 오벌 운영 총책임자는 “올림픽을 치른 지 거의 30년이 됐지만 매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5개국 내외의 선수들이 이곳으로 훈련을 하러 온다. 핵심은 최고 수준의 빙판과 편리한 주변 환경이다. 평창도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행운을 빈다(Good Luck)”라고 말했다.

밴쿠버=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소치 겨울올림픽#벤쿠버 올림픽#올림픽 시설물#평창 올림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