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두산 막강불펜 ‘KILL 라인’의 아련한 추억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6월 14일 05시 30분


전 두산 고창성-임태훈-이재우-두산 이용찬(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전 두산 고창성-임태훈-이재우-두산 이용찬(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그때는 선발투수가 5회까지만 던지면 걱정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NC 못지않았죠.”

두산 마무리투수 이용찬(28)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9년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은 ‘KILL 라인’에 대한 회고다. 이름에서부터 그 위력이 풍기는 KILL 라인. 이는 당시 불펜 마운드를 나눠 맡았던 투수들의 성(姓)의 영문 이니셜을 딴 별칭이었다.

● 2009년 227경기 41홀드 27세이브 합작

주인공은 우완 사이드암 고창성(33)과 우완 정통파 임태훈(29)~이재우(37)~이용찬(이상 우완), 총 4명이다. 이들은 2000년대 후반 두산 필승조를 이뤄 철옹성을 쌓아냈다. 특급마무리와 좌완불펜 품귀현상으로 늘 필승조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던 두산이었지만, 이들이 활약했던 때만큼은 걱정이 없었다.

KILL 라인이 처음으로 뭉쳤던 시기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경성대를 갓 졸업한 고창성이 두산 유니폼을 입으면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 당시는 삼성과 SK가 주도한 ‘불펜야구’가 KBO리그 최대 화두였다. 이듬해 두산 역시 이들을 내세워 허리 강화에 나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9년 맏형 이재우가 54경기 12홀드를 거두며 중심을 맡았고, 고창성이 64경기 16홀드 1세이브, 임태훈이 58경기 13홀드로 짐을 나눠지었다. 마무리 이용찬은 51경기 26세이브로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기록으로 봐도 이들의 활약상은 뚜렷했다. 이용찬은 당시 롯데 존 애킨스와 함께 구원왕에 올랐고, 고창성과 임태훈, 이재우는 각각 홀드 부문 2위와 4위, 6위에 랭크됐다.

전 NC 고창성-전 한화 이재우(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한화 이글스
전 NC 고창성-전 한화 이재우(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한화 이글스

● 임태훈, 고창성 이어 이재우마저 KBO 마운드와 작별

그러나 두려울 것 없던 KILL 라인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2011년 임태훈이 개인사에 휘말리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임태훈은 여론의 비난 속에 전성기 기량에서 내려앉았고, 결국 2014년을 끝으로 KBO리그와 작별을 고했다. 현재는 일본 독립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는 소식만 간간히 들려올 뿐이다.

임태훈이 방황하던 사이 고창성도 두산을 떠나 NC에서 제2의 야구인생을 꿈꿨다. 2012년 말 당시 김경문 NC 감독의 선택을 받고 유니폼을 갈아입은 것이다. 그러나 부진과 부상 등이 겹쳐 지난해 말 방출통보를 받고 말았다. 이재우도 세월의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지난해 시즌을 앞두고 한화로 이적한 이재우는 최근 은퇴를 고심했고, 결국 이달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앞으로는 한화 2군에서 후배 양성에 열중할 계획이다.

앞선 세 투수가 모두 KBO리그 마운드를 떠나며 이제 남은 선수는 이용찬 뿐이다. 이용찬은 “2009년은 선발투수가 5회까지만 던지면 걱정이 없었다. 우리 4명이 1이닝씩만 끊어 가면 경기를 내줄 확률이 적었다”면서 “지금의 NC가 자랑하는 ‘단디4’ 못지않았다”며 추억에 젖었다. 이어 “두산에 함께 있을 때 (이)재우 선배께서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 내가 상무에 있을 때도 술 한 잔 나누며 그때를 함께 떠올리곤 했다”면서 “선배께서 지도자로 변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멀리서나마 응원하겠다”며 메시지를 전했다.

두산 이용찬. 스포츠동아DB
두산 이용찬. 스포츠동아DB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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