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지난해 K리그 ‘바지감독’ 논란…법에 위배될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5월 11일 05시 45분


전 전남 송경섭 감독-전 제주 김인수 감독(오른쪽).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전 전남 송경섭 감독-전 제주 김인수 감독(오른쪽).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형사처벌 없지만 협회 자체적 징계 가능
지도자 자격증…팬과 선수에 대한 예의

사람을 만나다 보면 때로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보게 된다. 겉으로는 뭐든지 다 해줄 것처럼 친절하고 진실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제 잇속만 챙기는 사람이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겉으로는 퉁명스럽고 관심도 별로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는 깊은 애정을 갖고 대해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조직에도 있다. 어떤 조직에서 겉으로는 리더로 보이지만, 실권은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할까? 정답은 ‘바지사장’이다. 즉, 명칭만 사장이지 실제로는 허수아비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바지사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을 바지사장이라고 부르게 됐을까?

원래는 ‘받이’였는데, 소리 나는 대로 적다 보니 ‘바지’가 됐다는 주장이 있다. ‘총알받이’처럼 어떤 일에 대한 희생자라는 의미가 그 어원이라는 것이다. ‘핫바지’에서 따온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badge’의 일본식 발음인 ‘빳지’가 변해 ‘바지’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가슴에 배지(badge)만 달려있는 명목상의 사장이라는 뜻이다. 어원이야 어찌됐든 명목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통상 ‘바지’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다 보니 뭔가 좋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바지사장은 어떤 경우에 선임될까? 회사나 점포를 내려고 하는데, 실질적 대표의 이름으로는 설립이나 개설이 불가능한 경우에 보통 선임된다. 실질적 대표가 신용불량자이거나 세금체납자인 경우가 대표적이다.

바지사장이 가장 문제되는 경우는 불법적 사업을 하는 경우다. 실제 사장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바지사장을 선임하기 때문이다. 수익은 실제 사장이 챙기면서 바지사장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처벌만 대신 받게 한다. 불법오락실을 운영하다 단속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운영자라고 주장하면서 수사기관에 출석시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수사과정에서 실제 사장이 드러나 실제 사장도 바지사장도 모두 처벌을 면치 못한다. 사행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처럼 본래의 죄에 더해 바지사장은 범인도피죄로, 실제 사장은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을 받는 것이다.

지난 시즌 K리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른바 ‘바지감독’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챔피언스리그 출전 조건으로 감독에게 P급 자격증을 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원래 감독에게 P급 자격증이 없다 보니, 자격증을 지닌 사람을 외부에서 데려와 형식상 감독으로 선임하고 원래 감독을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팬들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거나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질타했다. 심지어 두 팀이 맞붙은 경기를 ‘바지감독 더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바지감독도 바지사장처럼 범죄가 될까? 형식과 실질이 일치하지 않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바지감독이나 실제 감독이 형사적으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감독이 작전을 지휘하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범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협회에서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징계 규정을 마련해 징계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징계 여부를 떠나 실질에 맞는 형식과 자격을 갖추는 것이 응원하고 환호하는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초등학교 교사자격증을 가진 교사라고 해서 대학원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이 없다고 볼 순 없다. 오랜 실무 경험을 통해 이론적으로 약한 부분을 보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높은 수준의 지도를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열의를 채워주려면 실력에 못지않게 자격도 필요하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격증이 성적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의 자격증을 요구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시즌이 끝난 뒤 실제로 강습회에 참석한 지도자들도 교육 내용에 크게 만족해했다고 한다. 프로선수라면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다. 그런 최고의 선수들을 지도하는 지도자라면 스스로도 최고의 실력을 지닐 필요가 있다. 그것이 팬들에게 수준 높은 경기를 선사하는 데 필요한 지도자의 의무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