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초 싸움…‘허기와의 전쟁’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28일 05시 45분


‘경마 대통령’ 박태종 기수(오른쪽)가 경주를 마친 뒤 검량을 위해 마장구를 들고 검량실로 향하고 있다. 몸무게와의 전쟁은 기수의 숙명이다. 365일 다이어트를 하는 기수들은 유명할수록 허기와 자주 싸워야 한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경마 대통령’ 박태종 기수(오른쪽)가 경주를 마친 뒤 검량을 위해 마장구를 들고 검량실로 향하고 있다. 몸무게와의 전쟁은 기수의 숙명이다. 365일 다이어트를 하는 기수들은 유명할수록 허기와 자주 싸워야 한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 기수들의 눈물겨운 감량 작전

1kg 늘어날 경우 1600m기준 1마신 차이
부담중량에 맞춰 소변도 보고 땀도 빼고
경주 출전 날엔 하루 종일 굶어야 할때도


길어봤자 2분 남짓한 짧은 경주를 위해 경마관계자들은 일주일간 땀 흘리며 준비에 몰두한다. 경주마 안장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기수도 마찬가지다. 조교사와 작전을 세우고, 말을 훈련시키는 것 외에도 기수들은 매주 몸무게와의 전쟁을 해야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65일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기수의 운명이다.

평일에는 인적이 없어 한기가 느껴지는 렛츠런파크 서울 관람대 지하는 경주가 열리는 주말이면 경마관계자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금세 후덥지근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기가 뜨거운 곳이 바로 ‘검량실’이다.

이곳에서 기수들은 당일 착용할 복장과 장구를 몸에 걸친 채 검량위원으로부터 체중을 확인받는다. 통상 경주마가 부담하는 무게가 1kg 늘어날 경우 결승선 도착거리는 1600m경주 기준으로 1마신이나 뒤처진다.

0.01초로 우승이 판가름 나는 경마에서 이 같은 차이는 엄청나다.

이 때문에 핸디캡 전문위원들은 경주편성 때 경주마의 능력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부담중량을 결정한다. 잘 뛰는 경주마에게는 높은 중량을, 그렇지 못한 말에게는 낮은 중량을 부여한다. 이는 경주마 사이의 능력 차이를 줄여 경주에 박진감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만약 경기 전 고객에게 공지한 부담중량과 실제 경주에서의 무게가 달라진다면 각종 정보를 종합해 베팅하는 팬들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를 방지하려고 검량위원들은 엄격한 잣대로 기수들의 체중을 확인한다.

검량위원의 매서운 눈빛 아래 기수들은 체중계에 올라 부담중량에 맞춰 마장구를 변경한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기수의 몸무게가 많이 나갈 때다. 체중이 낮을 경우는 마장구를 좀 더 무거운 것으로 바꾸면 문제없지만 체중이 오버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 경우 선택지는 두 가지다. 첫째는 기수가 스스로 수분을 쥐어짜내 0.1kg이라도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소변을 보거나 짧은 시간 찜질로 땀을 빼는 게 대표적이다. 경주 당일 이런 장면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마관계자는 “체중 조절을 위해 경주일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기수들의 애로를 대신 귀띔했다.

두 번째는 극단적으로 기수를 바꾸는 방법이다. 기수의 눈물겨운 감량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검량위원이 ‘노(No)’를 외치면 조교사는 급히 다른 기수를 찾아야한다. 늦어지면 경주 출전이 불가능해진다. 이럴 경우 경주에 참가한 뒤 꿀 같은 휴식을 취하던 기수가 조교사의 부탁으로 땀을 채 식히기도 전에 다시 체중계에 몸을 올리곤 한다.

검량을 마친 뒤에도 기수들은 맘 놓고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경주마가 순위에 들면 다시 몸무게를 체크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를 ‘후검량’이라고 한다. 모래, 빗물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몸무게 변화를 확인한다. 변화폭이 기준치를 넘을 경우 입상이 취소된다. 문세영처럼 유명한 기수는 하루에 10번 가까이 경주에 출전할 수 있어 하루 종일 굶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슈퍼스타만 배를 곯아야 하는 것은 경마에서만 볼 수 있다.

한편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서울은 5월부터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1일 명예심판위원을 운영한다. 심판업무 소개는 물론, 심의·순위판정·출발·검량·방송 등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공간들이 공개된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경마홈페이지(race.kra.co.kr) 서울경마 심판정보에 접속하면 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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