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지단의 박치기는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월 31일 05시 45분


박치기 후 퇴장당하는 지단.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박치기 후 퇴장당하는 지단.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마테라치, 귓속말로 지단 여동생 모욕
공연성 없어 형법상 모욕죄 성립 불가


프랑스의 대표적 문화공간인 퐁피두센터는 1977년 건립된 이래 매년 1000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고 있는 명소다. 그런데 2012년 9월 퐁피두센터 앞에 좀 특별한 동상이 전시됐다. 운동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가슴팍을 향해 머리를 들이민다. 상대는 비명을 지르듯 입을 한껏 벌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바로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의 한 장면이다. 머리를 들이민 남자는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상대는 이탈리아의 마르코 마테라치다.

독일 월드컵 결승전 당시 지단.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독일 월드컵 결승전 당시 지단.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지단의 박치기 사건!

마테라치는 경기 내내 지단을 따라다니며 전담수비를 펼쳤다. 그러던 후반 46분경 중앙선 부근으로 뛰어가는 지단에게 마테라치가 말을 걸었고, 지단도 몇 마디 응대했다. 이후 다시 마테라치가 뭔가 말을 하자 뒤돌아선 지단의 머리가 마테라치의 가슴팍을 향했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거센 항의에 주심은 지단에게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사건의 대체적 전모가 밝혀졌다. 마테라치는 지단의 유니폼을 계속 잡아당겼다. 지단은 ‘셔츠를 원하면 경기가 끝난 뒤 교환해주겠다’고 응수했다. 그러자 마테라치가 지단을 자극하기 위해 수위를 높였다. 지단의 여동생에 대해 ‘매춘부’ 같은 단어와 더불어 인종차별적 말로 모욕했던 것이다.

축구는 다른 어느 종목보다도 경기장이 넓다. 또 경기 내내 선수들이 붙어 다니며 몸싸움과 신경전을 펼친다. 게다가 경기장 내 위치한 심판은 1명에 불과하다. 심판이 선수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공격수와 전담수비수 사이의 은밀한 신경전을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지단과 마테라치의 사례처럼 모욕적인 말이 자주 오간다. 상대 선수를 자극해 평정심을 잃게 만들기 위해서다.

독일 월드컵 결승전 당시 마르코 마테라치.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독일 월드컵 결승전 당시 마르코 마테라치.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마테라치는 모욕죄?

경기규칙으로 마테라치의 행위를 제재할 순 없을까? 국제축구연맹(FIFA)의 경기규칙서에 관련 규정이 있다. ‘욕설이나 무례한 언어(abusive, insulting language)를 사용한 경우’ 퇴장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마테라치는 경기 후 FIFA로부터 2경기 출장정지와 약 400만원의 벌금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경기는 이미 끝났다. 이탈리아가 승부차기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만약 지단이 퇴장당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을까? 프랑스 팬으로선 아쉽고도 억울할 것이다. 원인 제공자가 마테라치인데, 거꾸로 지단이 퇴장을 당했으니….

이 사례와 같은 경우 흔히들 정당방위를 떠올린다. 상대방의 모욕행위에 대한 방어수단이라는 주장이다. 심정적으로는 지단이 억울해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맞는 말일까? 마테라치가 지단의 여동생에 대해 언급한 것이 형법상 모욕죄가 될까? 결론적으로 모욕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 마테라치와 지단 사이에서 은밀히 이뤄진 대화이다 보니, 공연성(公然性)이 없기 때문이다. 즉, 마테라치가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독일 월드컵 결승전 당시 지단.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독일 월드컵 결승전 당시 지단.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지단은 정당방위?

그렇다면 지단은 정당방위 주장을 할 수 있을까? 형법은 제21조 제1항에서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테라치의 행위는 죄가 되는 것과 별개로 지단 여동생의 명예를 침해하는 행위다. 문제는 박치기가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인지 여부다. 결론적으로 지단의 박치기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박치기가 모욕적 발언에 대해 일반적으로 당연시되는 대응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 스포츠의 기본정신은?

우리 형법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도 정당방위 규정을 갖고 있다. 다만 법률이 제정된 배경이나 환경이 달라 적용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우리보다 정당방위가 넓게 인정된다. 총기의 자유소유, 서부시대 이래로 형성된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자위권(自衛權) 관념 등의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 미국이나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기본관념은 같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나라별로, 종목별로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에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정당당’이라는 스포츠의 기본정신만은 종목과 나라를 떠나 모두 똑같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