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김현수와 선동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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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4일 시즌을 시작한 미국 프로야구에서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한국 선수는 6명이다. 25인 로스터는 국내 프로야구로 치면 1군 선수 명단이다. 부상에서 회복 중인 류현진과 강정호까지 조만간 25인 로스터에 포함되면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사상 최대인 8명이 된다.

이들 중 지난주 국내 언론과 팬들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선수는 김현수였다.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서가 아니었다. 반대로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 1할대의 타율에 허덕였다. 함께 메이저리그에 뛰어든 박병호와 오승환은 물론 조건부 메이저리그 계약을 한 이대호까지 일찌감치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것과 달리 김현수는 소속 팀의 단장이 마이너리그행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닐 정도로 궁지에 몰렸었다.

그런 김현수에게 격려를 보낸 국내 팬들이 많았지만 비난을 하는 팬들도 있었다. 부족한 기량으로 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고 국내로 돌아오라는 것이 비난의 요지였다.

그런데 정확히 20년 전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이 김현수가 아닌 ‘국보 투수’ 선동렬 전 KIA 감독이었고, 미국이 아닌 일본이 무대였다는 것이다. 두산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태평양을 건넌 김현수와 달리 1996년 선 전 감독은 당시 이적에 반대했던 소속팀 해태 구단과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동해를 건너갔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다 해외 프로야구로 이적한 첫 선수가 된 선 전 감독은 기대와 달리 일본에서의 첫해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11년 동안 뛰며 통산 평균 자책점 1.20을 기록했던 선 전 감독은 1996년 평균 자책점 5.50을 기록했다. 시즌 중 2군으로 강등된 선 전 감독을 보며 당시 국내 팬들 사이에서 국내로 돌아오라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선 전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고 이듬해부터 예전의 위용을 되찾으며 일본 프로야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김현수의 기량과 재능을 감안할 때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도전도 선 전 감독과 같은 해피엔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김현수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내로 복귀한다 해도 김현수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편안함과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고단함과 낯섦에 도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김현수는 오히려 칭찬받아야 한다. 김현수는 볼티모어로부터 2년 동안 연봉 700만 달러(약 80억 원)를 받게 돼 있다. 거액이다. 그러나 미국에 가지 않았어도 김현수는 국내에서 비슷한 돈을 벌 수 있었다. 지난해 말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됐을 때 국내 구단들이 예상한 그의 몸값은 100억 원을 넘었다.

고단함은 의지로 참아낼 수 있지만 낯섦은 의지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김현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지난해 동료들이었던 두산 선수들도 더그아웃에서 자유롭게 경기를 즐겼지만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익숙한 스타일을 버리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하는 스타일을 찾아내 맞추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20년 전 선 전 감독을 어렵게 만들었던 낯섦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욕심이 김현수를 오히려 부진의 늪에 빠지게 한 것이다.

올해 초 미국으로 떠나며 한국으로 유턴하면 실패자로 생각한다고 말했던 김현수는 4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김현수는 그래서 아름답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김현수#선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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