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남자부 준PO는 어떻게 탄생했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11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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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부 하위권 팀들 요구로 2010~2011시즌 도입
3전2승제로 2011~2012시즌까지 2차례 펼쳐져
2013~2014시즌 단판승부로 부활…‘봄배구’ 완성


V리그에 처음 준플레이오프(준PO) 제도가 등장한 것은 2010~2011시즌이었다. 남자부에서 빅3에 눌려 ‘봄 배구’를 구경조차 못하던 LIG손해보험 등이 “우리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7개 구단 중 상위 3개 팀과 하위 3개 팀 사이에 낀 4위에게도 희망을 준다는 의미를 담아 3판2승제를 도입했다. 2011~2012시즌까지 이어진 준PO는 한 시즌 동안 사라졌다.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로 상무신협이 V리그를 떠나 6개 구단 체제가 된 탓이었다. 2013~2014시즌부터 준PO는 단판대결로 부활했다. 공교롭게도 이후 우리카드와 대한항공은 3위와 승점차를 3점 이내로 좁히지 못해 준PO가 성사되지 못했다. 1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삼성화재-대한항공전은 4년 만에 부활한 준PO였다.

● 삼성화재에 행운 안겨준 2010~2011시즌 첫 준PO

새로운 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팀은 삼성화재였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주전 레프트 석진욱이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또 다른 살림꾼 손재홍도 아팠다. 최태웅을 FA 보상선수로 현대캐피탈에 넘겨준 삼성화재는 흔들렸다. 박철우, 가빈이 세터 유광우와 손발을 맞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V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1라운드에서 3연패를 당하는 등 추락했다.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5위였다. 만일 준PO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너무 먼 목표에 주저앉았을 수도 있다. 4위만 하면 봄 배구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삼성화재를 버티게 했다. 신치용 감독은 최하위로 떨어진 어느 날 심야회식 후 눈바람이 부는 운동장에서 선수들을 굴리며 “절대로 시즌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결국 3위로 시즌을 마친 삼성화재는 LIG손해보험과 준PO를 맞았다. LIG손해보험 사령탑은 신치용 감독의 제자이자 삼성화재 창단 멤버인 김상우 감독이었다.

● 수비가 결정한 준PO의 향방

2011년 3월 16일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준PO 1차전. LIG손해보험이 첫 세트 20-21에서 임동규의 목적타 서브로 삼성화재의 리시브를 흔들었다. 서브에 이어 밀란 페피치와 김철홍이 가빈의 공격을 연속으로 막아내며 23-21로 역전했고, 1세트를 따냈다. 2세트 박철우가 20점 이후 분발하면서 삼성화재는 반격의 계기를 잡았다. 21-20에서 김요한을 블로킹으로 잡아낸 뒤 2연속공격을 성공시킨 것이 분수령이었다. 기세가 오른 삼성화재는 3·4세트도 따냈다. 18득점의 박철우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3월 18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벌어진 2차전. 보스니아 출신 페피치가 LIG손해보험에 승리를 안겼다. 41득점을 몰아친 덕분에 풀세트 접전 끝에 이겼다. LIG손해보험은 25-22, 25-20으로 먼저 두 세트를 따냈지만 삼성화재는 기어코 따라갔다. 간신히 승리를 따낸 김상우 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 1승을 얻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고 말했다.

운명의 3차전. 삼성화재는 여오현의 디그 덕분에 PO에 진출했다. 1세트가 하이라이트였다. 5점차로 끌려가던 삼성화재는 25-25에서 박철우의 스파이크가 거려 세트를 내줄 판이었다. 그러나 여오현이 어택커버로 이 공을 살려낸 뒤 박철우가 반격해 기어코 점수를 만들어냈다. 여오현은 페피치의 강타도 잡아낸 뒤 가빈의 반격으로 점수를 만들었다. 이후 경기는 삼성화재의 일방적 페이스였다.

● 2011~2012시즌 신데렐라처럼 등장해 승부조작으로 사라진 KEPCO

시즌에 가장 화제를 모든 팀은 KEPCO였다. V리그 출범 이후 5~6~5~6~6~6~5위를 했던 만년 하위팀이 신춘삼 신임 감독의 기막힌 리빌딩 능력 덕분에 선두를 달렸다. 삼성화재를 떠났던 안젤코와 다른 구단에서 버림받고 은퇴했던 곽동혁이 기적을 만들었다. 문성민을 주고 현대캐피탈에서 데려온 하경민과 똑똑한 신인 서재덕도 있었다.

리그 선두를 달리며 부푼 꿈에 부풀던 KEPCO는 2월에 터진 승부조작 파문의 직격탄을 맞았다. 임시형, 박준범 등 주전 공격수 2명과 김상기, 최일규 등 세터 2명이 빠져나갔다. 이후 KEPCO는 경기를 제대로 한다는 것이 기적 같았다. 막판 7연패에 빠졌지만 5위 드림식스의 추격을 뿌리치고 간신히 준PO 티켓을 잡았다.

KEPCO의 준PO 상대는 하종화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은 현대캐피탈이었다.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신 감독은 “지금은 업어주는 수밖에 없다. 허리가 부러지더라도 무동을 태우더라도 업어주겠다”며 우여곡절 속에 봄 배구를 하게 해준 선수들에게 고마워했다.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KEPCO는 서재덕마저 부상으로 팀을 떠난 터라 뛸 선수가 없었다.

3월 25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이 3-0 완승을 거뒀다. 블로킹에서 14-4로 압도했다. 그동안 세터로 뛴 경험이 거의 없던 김천재의 세트에 안젤코가 애를 먹으면서도 19득점을 했다. 27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은 수니아스가 31득점, 문성민이 22득점한 덕분에 3-1로 이겼다. 안젤코는 비록 팀은 패했지만 29득점을 올리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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