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50m서 캐낸 ‘메이저리그 흙’ LG 2군 야구장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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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챔피언스 파크’ 22일 개장… 유망주 요람으로 거듭날지 주목

22일 문을 여는 경기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 야구장 마운드에 깔린 ‘메이저리그용’ 미국 캘리포니아산 흙. LG 제공
22일 문을 여는 경기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 야구장 마운드에 깔린 ‘메이저리그용’ 미국 캘리포니아산 흙. LG 제공
멀고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네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도슨캐니언 지역 지하 50m에 묻혀 있던 제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까지 오게 됐으니까요. 땅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경기 이천이 저의 새로운 집입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장에 깔리는 흙입니다. 미국에서도 좋은 품질을 인정받아 여러 야구장을 누비고 있지요. 류현진 선수(LA 다저스)가 뛰는 다저스타디움과 예전 박찬호 선수가 뛰었던 샌디에이고의 펫코파크에도 제 친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 소문이 한국에도 났나 봅니다. 한국 야구장들이 저를 많이 찾으시네요. 지난해 잠실구장과 마산구장이 저를 썼고요. 이제는 1군 경기장이 아니라 유망주들을 키우는 2군 연습장에도 쓰이게 됐습니다.

LG는 22일 경기 이천시 대월면 부필리에 ‘LG 챔피언스파크’의 문을 엽니다. 야구장 2면과 안락한 숙박시설, 다목적 재활센터 등 세계적 수준의 시설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야구장의 기본은 그라운드이고, 그라운드의 핵심은 흙 아니겠습니까.

팬들 눈에는 똑같이 보일지 몰라도 야구장에는 다양한 흙이 사용됩니다. 투수들의 스파이크에 자주 파이는 마운드에는 딱딱한 흙이, 내야 주루라인에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흙이 사용됩니다. LG 챔피언스파크의 마운드에는 ‘마운드 클레이’, 내야에는 곱고 부드러운 입자의 ‘인필드 믹스’란 흙이 깔려 있습니다. 마운드 클레이는 흙이 쉽게 파이지 않아 투수들이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인필드 믹스도 파임이 적고 흙덩어리가 생기지 않아 불규칙 바운드를 막아줍니다.

여기에 컨디셔너라는 구운흙을 뿌립니다. 평소에 물을 뿌려주면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건조한 날씨 때 인필드 믹스나 마운드 클레이에 수분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우천시에는 물을 빨아들입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전문 기술이 필요합니다. 펫코파크의 헤드 그라운드 키퍼인 요다 루크 씨가 직접 와서 챔피언스파크에 흙을 깔았습니다. 그는 단순한 구장 관리인이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그의 허락이 없으면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는 경기 때는 10여 명의 직원을 관리합니다. 그라운드 관리의 핵심은 수분 관리입니다. 언제, 어떻게 흙에 물을 뿌려주느냐가 관건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물뿌리개 꼭지를 잡는 데만 10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메이저리그급의 시설을 갖췄으니 야구도 메이저리그처럼 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한때 ‘유망주의 무덤’이란 오명을 얻었던 LG가 유망주의 요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이천=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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